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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18 조회수 : 572

요한 8,1-11 
 
자녀의 죄는 어머니가 낳을 때 그 흘린 피로 이미 다 씻겼다 
 
 
영화 ‘더 스토닝’은 이란에서 아직도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투석형(投石刑)’을 소재로 한 실화입니다.
두 손목과 양팔이 뒤로 묶인 채, 도망가거나 피할 수조차 없도록 허리까지 땅에 파묻힌 상태로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돌을 맞으며 죽어가야 한다면? 
 
그것도 자신이 직접 낳은 아들들과 남편, 아버지와 친척 남자들, 평생 한 가족처럼 얼굴을 보고 지낸 마을 이웃들이 던지는 돌이라면?
안구의 핏줄이 터지다 못해 돌출되거나 머리뼈가 깨졌는데도 무더기로 날아오는 돌을 맞으면서
자신의 무죄와 억울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아이 넷을 키우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소라야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폭력과 폭언 탓에 몹시
불행합니다.
자식들을 생각하며 힘겨운 결혼생활을 버티던 그녀는 14살 소녀와 결혼하기 위해 위자료를 주지 않고 이혼하기를 원하는 남편 알리가 꾸민 잔혹한 함정에 빠져듭니다. 
 
간음한 여인으로 몰린 것입니다.
그릇된 탐욕과 거짓은 들개 같은 사내들의 횡포로 이어지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담한 죄악은 집단침묵으로 뒤덮여 묻힐 뻔하지만, 나중에 책을 쓴 자흐라의 용기 있는 목소리에 힘입어 마침내 소라야의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 용서하는 방식은 장차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로 우리 죄를 용서하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돌을 들고 있는 바리사이들의 죄를 땅에 쓰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당신 손가락은 땅에 박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죄를 흙에 쓴 글자처럼 사라지게 하시기 위해 우리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돌아가시고 묻히셨습니다.
우리 모든 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땅에 묻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라고 하신 순간은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라고 물으시고 여인에게서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은 직후였습니다.  
 
나를 단죄하는 이가 없다면 나도 굳이 다른 이를 단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판관은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탓을 돌렸듯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이유는 자기 안에 자기를 단죄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부끄러웠고 이미 두려웠습니다. 자아가 바로 그들을 단죄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를 판단하는 이유는 그 죄책감을 가리기 위해 방어기제 중 하나를 발동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위 영화에서 알리는 위자료를 주기 싫은 것과 14살 소녀와 결혼하고 싶은 죄를 용서받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것이 용서받았다면 소라야에게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알리는 하느님의 용서를 믿지 않았기에 악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2018년 연말에 어머니를 살해한 30대 남성이 대법원이 징역 20년형을 확정했습니다.
38살 A 씨는 술에 취해 TV를 보다가 어머니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A 씨는 평소에도 잦은 음주 등으로 꾸중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날 꾸중을 듣는 과정에서 뺨을 맞은 A 씨가 급기야 어머니에게 의자와 흉기를 휘둘렀고,
의식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내버려 둔 채 달아나기까지 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아들의 흉기에 찔린 어머니가 죽어가면서 아들에게 “옷을 갈아입고 도망가라.”
하고 말한 건데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들을 걱정했던 겁니다.
전에 사망 보험금 노리고 지인을 시켜 차 사고 내 어머니를 죽이려 한 아들의 선처를 호소한 노모도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는 내가 칼을 휘둘러도 죽어가면서 그 죄까지 가지고 가십니다.
자신이 낳은 존재이기에 그 책임을 자신이 껴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죄를 짓고 나에게 유일하게 심판하셔야 할 분이 나를 죄 없다고 하시는데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벌도 받고 죄책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더 큰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책임으로 안고 대신 돌아가십니다.
부모는 낳을 때부터 그 피로 자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한 분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그 죄책감 때문에 이미 용서한 분을 찌르게 됩니다.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자녀를 낳을 때 자녀가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피로 보속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에덴동산에서 뱀을 놓아주실 때 이미 죄지을 것을 다 용서해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죄라는 것이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어 끝까지 하느님을 원망하고 칼을 들이댄다면 더는 구원을 희망할 수 없게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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