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8,1-11: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돌을 던져라.
유대인들이 주님을 시험하려고,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십니까?”(4-5절) 한다. 이 말에는 교묘하게 함정을 만들어 예수님을 고소하여 없애려고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만일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셨으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한결같이 가르치던 사랑을 잊었다고 비웃었을 것이고, 돌을 던지지 말라고 하셨으면, 예수님께 노여움을 드러내며, 율법과 반대되는 사악한 행동을 하는 자라고 당당하게 단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6절) 예수님은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 땅에다 무엇인가를 쓰신다. 이 행동은 지금 여자를 고발하는 자들과 죽을 운명으로 태어난 모든 이의 죄를 땅에 쓰신 것이다. 죄를 용서하러 오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7절) 예수님은 그들의 함정을 아시고 그 함정에 빠질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양심은 있었다. 그들은 혼란에 빠져 서로 마주 보기도 불편한 듯,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모두 떠나갔다. 예수님께서 다시 땅에 무엇을 쓰신 것은 그들이 도망칠 시간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자비의 눈길을 보내신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11절) 하신다.
우리는 과연 이웃의 잘못을 어떠한 눈으로 보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성급히 판단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라는 말씀과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 7,3-5)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용서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는 죄짓지 마라.”고 하셨다. 하느님 앞에 설 때까지 우리는 완성되지 못한 존재이다. 항구하게 우리 자신을 정화해 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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