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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7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17 조회수 : 344

복음: 요한 12,20-33: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의 전례는 파스카에 대해 고통스러우면서도 기쁨에 찬 묵상을 요구하는 사순절의 근본적인 주제들이 들어있다. 낮춤의 신비보다 고양의 신비로 제시되는 십자가 신비와 자아 포기와 성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을 따르라는 권고,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 앞에 우리의 선택에 따라 나타나는 구원과 단죄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시는 사랑의 결정적인 선물인 새로운 계약 등이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올 것을 예언하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실 새 계약으로 결정적이고 절대 깨지지 않을 계약이라고 한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생애의 마지막 파스카를 지내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계시다. 그것을 보고 그리스인들이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21절) 한다. 여기서 본다는 동사는 예수님을 그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루살렘 입성 때 군중이 알아차리지 못한 그 비밀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향한 독백처럼 말씀하심으로써 그분의 신비스러운 점을 드러내셔서 그리스인들의 갈망을 채워주신다. 예수님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죽어야 하는 한 알의 밀알처럼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우리 삶의 신비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는 노력이다. 여기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생명을 버린다는 것은 죽음을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구원을 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한 헌신에의 초대를 말하는 것이지 죽기 위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풍요한 결실 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밀알의 죽음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때, 그리스도께는 최대의 영광이 돌아온다.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우선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더욱더 큰 사랑을 표명하는 것이며, 또 이러한 행위가 인간을 구원하고 이끌어줄 능력을 갖추기 때문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32절). 
 
그리스도를 뵙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은 구원으로 이끌려 들어오는 이방인의 세계를 나타내는 첫 번째 표현이다. 십자가는 이미 그리스도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 우리는 지난 주일의 복음의 높이 들린다는 말을 만난다. 바로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고통을 통해서 얻은 영광을 의미하였다. 특히 요한복음에 있어서는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이 되기 전에 이미 높이 들리심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높이 들림이라는 사실이 십자가의 죽음에 있어 예수님의 공포와 거부감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 무서운 상황 앞에 두려움과 마음의 동요를 표현하고 계시다. 그래서 성부께 기도하시면서 당신이 느끼시는 괴로운 긴장감을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함으로써 마음의 분열을 극복하고 이 세상의 역사를 위한 그 결정적 순간의 주인공이 되신다. 그리고는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28절) 기도하신다. 즉, 당신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기도하신다.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28절). 아버지의 계시는 예수님의 전 생애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확인이다. 즉, 예수님의 지나온 생애, 죽음을 감수해야 할 생애, 부활을 통해 더욱 빛나게 될 생애를 말한다. 이 모든 일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세상에 대한 심판이 내려진다. 지난주일 복음에서 이미 빛이시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심판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이 내려지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신다. 그분을 죽이는 것은 빛을 거스르는 결정적인 죄였다. 이렇게 빛을 거부하고 단죄를 받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을 능력이 없는 것에 대한 심판이다. 우리는 예수님께 자신을 충실히 내맡기고, 그분 사랑의 선물에 우리 자신을 개방하여야 한다. 사탄에 대한 승리는 결정적으로 여기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에 항상 자유롭게 순종할 수 있는 내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비록 그것이 그리스도께 일어났던 것처럼 육체적인 정신적인 고통을 수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 예수께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십자가의 고통 앞에 큰 소리와 눈물로써 기도하고 간구하셨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죽음에서 구해주지는 않으셨지만, 그분에게 십자가를 지워야 했던 당신의 뜻을 이룰 능력을 주심으로써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그 계약을 깨지 않고 무한한 아버지께 대한 사랑으로 완성하셨다. 
 
예수님의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순명은 당신 자신이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이 됨을 알 수 있다. 그 영광은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심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그 사랑의 결과로 세상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들과 영원히 결합하셨기에 인간은 그분께 결정적인 사랑의 응답을 드려야 한다. 이 결합에 사랑이 없다면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분께 결합할 수 없을 것이다. 사순절의 여정은 우리를 하느님과의 만남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여정이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사랑 안에서 새로 태어남이 가능하고, 부활을 지내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매 순간 그분에게 사랑의 응답을 드리려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자기를 끊는 아픔을 이겨내도록 주님께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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