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7장 40-53절
진리는 바로 내 발밑에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 이 세상은 크게 두 부류의 사람으로 양분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부류의 사람들과 끝까지 거부하는 부류의 사람들로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 도래를 기점으로 인해 예수님은 인간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의 탄생을 기점으로부터 서양 역사의 기원인 서기(西紀, Anno Domini-A.D)를 세기 시작합니다.
역사 시간에 기원전 이란 말로 통용되는 "B.C" 역시 Before Christ,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처럼 인류 역사 안에 한 획을 긋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진정한 행복을 찾은 사람,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분으로 인해 인생 쫄딱 망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그분으로 인해 인생 종치고 죽음의 길로 접어든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자유 의지를 무척이나 존중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맡기십니다.
인간 측의 자유의지에 일임하십니다.
예나 지금이나 죽어도 예수님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의 존재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고 끝까지 수용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한 사람,
괜한 똥고집을 잘 부리는 사람,
뭔가 특별한 것만 찾는 사람,
대단한 것들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입니다.
사실 메시아는 바로 우리 가까이에 계시는데,
천국 문이 바로 우리 일상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진리는 바로 내 발밑에 있는데,
눈이 너무 높기에, 기대치가 너무 높기에,
너무나 물질 만능주의,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에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쉽게 쉽게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그분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단순한 사람, 소박한 사람, 가난한 사람,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언제나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거부감 없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예수님을 주님으로 기꺼이 고백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입술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구체적인 삶으로 응답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분의 일생을 내 삶 안에 깊이 각인시키겠다는 맹서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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