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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16 조회수 : 530

복음: 요한 7,40-53 
 
성경 해석: 빛으로 빛을 보는 일 
 
 
오늘 복음은 성경 해석에 관한 요한복음의 이해를 보여줍니다. 복음사가들은 생각했습니다.
‘왜, 어떤 이들은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어떤 이들은 그 반대로 나아갈까?’ 
 
루카 복음은 그 사람 안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부자와 거지 라자로’ 비유에서 이것이 잘 드러납니다.
부자는 라자로를 부활시켜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할아버지는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 즉 성경을 믿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 부활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너희들에게 표징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이 너희 눈을 가려서
믿지 못하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예언자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다고 예수님을 부정합니다. 
 
성경은 모두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성경을 읽어도 그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요한은 루카 복음에서 더 전진하여 결국 그들 안에 ‘사랑’이 없어서 성경을 읽어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뒤에 나오는 것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율법대로 그녀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율법을 존중해 주면서도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율법 위에 자비와 사랑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들 안에 사랑이 없으니 사랑 자체이신 분이 인간이 되셔서 하는 행동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빛으로 빛을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꽃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이미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없는 것은 인식할 수 없습니다. 
 
개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꽃이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우리가 우주가 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인식할 수 없는 이유는 우주 밖으로 나가 우주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한계 내에서 보이는 것만 인식할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없다면 성경을 읽어도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중증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어머니를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남편 없이 아들을 키워야만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잃게 됩니다.
의족으로 걸어야 하는 아들을 엄마는 일으켜 주지도 않습니다.
넘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나라며 모질게 떠납니다.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란 아들은 그런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운동회 날 아들은 학교 가기를 꺼립니다. 그러나 엄마는 빨리 일어나 운동회에 가라고 합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운동회에 가라는 엄마가 밉습니다.
그에게 걸림돌은 비탈진 골목길 계단이었습니다. 
 
일반인도 오르내리기 어려운 경사의 길을 매일 지나다녀야 했습니다.
특히 눈이 오는 날은 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항상 눈이 쓸려 있었고 그것을 어머니가 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모진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눈이 오는 어느 날, 병원에서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급히 달려간 아들은 어머니를 찾습니다. 그런데 병원 앞에서 눈을 쓸고 있는 것입니다.
짜증 난 목소리로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아들이 말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못 알아보고 말합니다. 
 
“눈 쓸어요. 눈이 오잖아요.
우리 아들이 학교 가야 하는데, 다리가 불편해서.”
그제야 아들은 깨닫습니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할 때, “혼자 일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래?”라고 했던 말과
“운동회라 창피해서 학교에 못 간다고? 그럼 평생 숨어 살아!”라고 했던 말이 이해됩니다.
어머니가 사랑이셨다는 것을 다시 믿게 된 것입니다. 
 
“아들은 몰라요, 그거.”
“몰라도 돼요. 우리 아들만 안 미끄러지면 돼요.”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겉옷을 벗어서 열심히 눈을 쓰는 어머니를 덮어드리고 안아드립니다.
[출처: ‘치매 걸린 어머니가 한겨울에 눈을 쓸고 있었던 이유’, 유튜브 채널, ‘JTBC Voyage’] 
 
먼저 사랑을 믿어야 사랑의 행위가 보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믿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머니의 모든 행위가 미움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믿으니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사랑이 없는 사람은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랑이심을 발견하고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같은 성경을 보고도, 같은 십자가를 보고도 누구는 믿고 누구는 믿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 바로 직전에는 당신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인 성령을 받으라는 ‘성령’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도에 의해 쓰였습니다.
사랑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아무리 연구해도 하느님 사랑의 계시인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예 수님은 당신은 빛이시고 어둠 속에 머물지 말라고 하십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인데, 진리는 성령의 빛으로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죄를 지은 사람 안에는 머무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요한 8,34)라고 하시고, 그들이 성령을 지니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거짓의 아비”를 따라서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요한 5,44) “아비의 욕망대로”(요한 8,44)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것이 빛이 아닌 어둠을 섬기는 방식입니다.
그 어둠 속에 빠져있기 때문에 빛을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믿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죄에서 벗어나 성령을 충만히 받으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빛으로만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편 36,10 참조).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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