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7,40-53: 그리스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리가 있겠는가?
초막절을 지내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많은 것을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과 행적을 본 군중들은 예수님이 바로 자기들이 기다리던, 모세가 약속한 예언자(참조 신명 18,15)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지 않겠느냐며 논쟁을 한다. 그분이 자라나신 나자렛에 가려 그분이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동정녀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점으로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성전 경비병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와 위엄에 압도되어 감히 예수님을 잡아서 끌어올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46절) 하였을 때,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49절)이라고 욕한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을 모르던 사람들이 율법을 내리신 분을 믿었고, 율법을 가르치던 사람들은 그분을 업신여겼다. 결과적으로 율법학자인 바리사이들은 눈먼 자들이 되었고, 율법을 모르면서도 율법을 만드신 분을 믿은 이들은 보게 되었다.
예수님을 만났던 니고데모가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51절) 하였을 때,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52절)하고 니고데모에게 핀잔을 주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52-53절 참조). 이것이 비극이다. 믿음의 체험이 하나의 무미건조한 논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며 그분은 우리가 올바로 알고 누려야 하는 분이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있다. 우리는 또한 많은 경우에 나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그렇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 권력이나 지식이나 교만으로 쌓은 벽을 허물어야 한다. 이것을 다 헐어버릴 때,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이 사순절의 기간이 진정 우리에게 은총의 때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여야 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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