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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1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11 조회수 : 487

이사야 65,17-21 
 
요한 4,43-54 
 
그때 우리의 눈물은 웃음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춤으로 바뀔 것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 원거리 비대면 치료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의료진이 환자와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멀리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서도 진료는 물론이고 치료까지 하는 시스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원거리 비대면 치료를 실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카나에 머무시는 동안 한 왕실 관리가 황급히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보니, 한걸음에 달려온 것입니다. 
 
왕실 관리는 아들이 처한 위기 상황 앞에 체면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예수님께 간절히 청했습니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요한 복음 4장 49절)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아들의 상태는 위중한데, 예수님께서 머물고 계시던 카나와 환자가 누워있는 카파르나움은 33Km 떨어져 있었습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도보로 간다면 적어도 7~8시간은 걸릴 거리였습니다.
낙타나 나귀를 타고 간다할지라도 네다섯 시간은 잡아야했습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즉시 파악하신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치유와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원거리 비대면 치료 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복음 4장 50절) 
 
한 인간 한 인간의 개인적인 필요성에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대응하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배려가
크게 돋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달려오느라 기진맥진한 아버지를 눈여겨보십니다.
아들을 향한 각별한 사랑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그의 믿음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아직 예수님 당신의 신원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물끄러미 바라보십니다. 
 
왕실관리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도는 아직 한참 낮았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한 사람의 기적가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든지 다 현존하시는 멀티 플레이어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굳이 33km나 되는 장거리를 죽어라고 뛰어가지 않으셔도 원격치유가 가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그였기에 예수님을 향해 집요하게 같이 가달라고 졸라대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졸라대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였습니다.
늑장부리다간 아들과는 영영 이별하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탁이 아니라 거의 협박수준입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한 왕실 관리였지만, 그의 간절한 눈망울과 그의 찢어지는 가슴을 예수님께서는
차마 외면하실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큰 자비를 베푸십니다. 
 
아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을 확인한 가족들과 종들은 얼마나 기뻤던지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왕실관리에게 알리기 위해 동네어귀까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비탄으로 가득 찼던 집안은 순식간에 축제분위기로 돌아섰습니다.
한바탕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머지않아 우리 눈앞에서도 똑같이 벌어질 풍경입니다. 
 
오늘 비록 우리가 이렇게 힘겹게 견뎌나가고 있지만, 오늘 비록 우리가 이렇게 큰 슬픔에 잠겨있지만, 오늘 비록 우리가 이렇게 큰 십자가에 허덕이고 있지만, 머지않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큰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눈물은 웃음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춤으로 바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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