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3,14-21
예수님의 관심은 심판이나 단죄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용서와 자비, 구원과 영생에 맞춰져 있습니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오늘따라 왜 이리 눈물겹고 은혜롭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길 돌아보면 어찌 그리 굽이굽이 수치스러운 죄와 타락과 방황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이런 나를 하느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엄청나게 큰 보속과 무시무시한 처벌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제 생각은 사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던 하느님 상은 피도 눈물도 없는 심판관으로서의 모습이 우세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우상숭배 앞에 크게 진노하시며 벌주시는 심판과 단죄의 하느님이 그리도 두려웠습니다.
정해진 율법 조항에 의거해서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나 악행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시는 징벌의 하느님 얼굴을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딴 판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공생활 기간 내내 입에 달고 다니신 말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
뜻밖에도 이 땅에 강림하신 메시아는 심판자나 처벌자의 모습이 아니라 한없이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때로 더없이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여행길의 절친한 동반자로, 끝도 없이 기다리고 용서하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심판하실 권한을 주신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권한은 전혀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로지 용서와 자비, 희생과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인류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앞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분을 향해 기쁜 얼굴로 다가서는 이들에게는 모두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 끝끝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멀리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빛을 등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단죄와 심판의 도마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 때문이라는 사실,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요.
오늘도 제 삶 안에 길게 드리워진 짙은 죄의 뿌리를 슬픈 얼굴로 바라봅니다.
밥 먹듯이 지어온 숱한 죄와 과오 속에 살아온 제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금 희망을 갖습니다.
우리의 죄가 진홍빛 같을지라도 죄질이나 죄 값은 뒷전이신 예수님, 오직 우리들의 해방, 구원,
영원한 생명에만 관심이 지극하신 자비의 예수님 때문에 오늘 다시 한 번 힘차게 일어서야겠습니다.
아무리 우리 죄가 크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는 모두 구원될 것입니다.
우리 죄가 크지만 하느님 자비는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단죄하고 속박하지 않는 한 결국 우리는 무상으로 베푸시는 하느님 은총의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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