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8,21-35
사람이 미워진다면 우선 감사일기 쓰고 십일조 내고 자선부터 실천하라
영화 ‘레인 맨(Rain Man)’에서 돈만 아는 이기적인 찰리 배빗은 자폐증이 있는 그의 형
레이먼드와의 동행을 통해 성숙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찰리는 빚에 허덕이면서 파산 직전에 몰렸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유산을 받으려면 형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레이먼드를 고인이 된 아버지의 재산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고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 형이 자기를 구하려다 오히려 부모님에 의해 시설로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는 형이 있는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레이먼드와 함께 다니며 모험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 형과 정이 듭니다.
그리고 자신이 형을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 시설에 살게 하는 것이 더 형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유산을 포기합니다.
돈을 좋아하는 마음은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관계는 돈을 좋아하는 마음과 반대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용서에 관한 내용이지만, 비유 말씀은 돈을 주제로 하십니다.
곧 일만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일만 탈렌트는 하루 일당을, 곧 한 데나리온을 10만 원이라치면 6조 원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액수를 탕감받은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꾸어간 돈 100데나리온, 곧 천만 원을 갚지 않는 것에 더 화를 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6조 원을 받은 기쁨이 천만 원 잃은 고통보다 당연히 더 커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치부할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용서는 내가 받은 용서의 기쁨이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이가 나에게 주는 고통보다 크지 못하게 느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피해의식’이 막습니다. 피해의식이란 내가 사랑받지 못한 존재라는 믿음입니다.
보통은 어렸을 때 받지 못했던 사랑의 상처가 너무 커서 나이가 들어서도 생존에 필요한 재물을 잃는 고통을 남들보다 몇 배나 크게 느낍니다.
그래도 6조 원의 기쁨보다 천만 원의 고통이 더 큰 것은 문제입니다.
미움은 교만에서 옵니다.
그러나 그 교만은 또한 육욕과 탐욕을 자아냅니다.
가장 이기기 쉬운 것이 탐욕이고 그다음이 육욕이고 마지막이 교만입니다.
그러니까 용서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우선 탐욕을 먼저 없애야 나에게 돈을 꾸어간
사람에 대한 원한이 줄어듭니다.
우리는 탐욕을 없애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일기 쓰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 것이라고 여기게 되어 나에게 돈을 안 갚는 사람이 덜 미워집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재물을 주신 이유는 가난한 사람과 나누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버는 이유는 가정을 위해 내어주라는 뜻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만 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록펠러는 십일조를 철저히 내는 사람이었지만, 돈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쓸데없는 보험료가 나갔을 때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병이 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때는 당연히 미운 인간들이 많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불치병에 걸려 오래 못 살게 되었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여자아이의 수술비를
지원하게 되었고 그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진 것에 감사한 것을 넘어서서 줄 수 있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잃은 재물은 오히려 좋은 일에 쓰였다고 하며 미워지던 사람이 고마워질 수도 있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은 그 한 군데의 상처 때문에 건강한 다른 많은 지체들의 행복을 잊어버립니다.
오직 그 상처에만 집중하고 그 상처에 아주 작은 아픔이라도 더해질라치면 기겁합니다.
따라서 누구라도 그 상처를 건드리면 용서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재물이나 명예, 인기나 혹은 내가 가진 무엇으로도 상처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미움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분노는 나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데서 옵니다.
그 욕망을 무력하게 만드는 게 이웃 사랑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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