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21,33-43.45-46
우리는 잠시 하느님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입니다!
소작(小作)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지주로부터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수확의 일정량을 바치며 생계를 이어가는 형태의 농사입니다.
일년내내 죽을 고생만 하고 손에 쥐는 것은 쥐꼬리만큼인 소작농들의 애환은 오랜 역사 소설의 주된 테마였습니다.
돈보스코를 연구하다보니 그분의 부모님 역시 소작농이었습니다.
구호대상인 극빈자 계급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프란치스코 보스코와 맘마 마르가리타는 남의 땅을 빌려 하루 온종일 뙤약볕에서 죽기살기로 일만 하던 소작농이었습니다.
부양해야 할 식구는 많은데, 농업이 기계화가 되기 훨씬 전이지, 돈보스코의 부모님들은 그야말로 하루 온종일 뼈빠지게 일만 하셨습니다.
돈보스코께서 유명인사가 된 이후, 알베르 뒤 보이라는 전기 작가가 근사하게 돈보스코 전기를 집필했었는데, 최종적으로 돈보스코에게 검열을 부탁했습니다.
돈보스코가 제일 먼저 수정한 대목이 있습니다.
“돈보스코의 가족은 꽤 넉넉한 농부였다.”라는 구절을 확인한 돈보스코는 빨간 펜으로 찍찍 긋고,
이렇게 고쳤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농부였다.”
그만큼 소작농들의 삶은 고달팠고 힘겨웠습니다.
사실 소작인들 입장에서 지주들이 땅을 빌려준 것,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작인들 가운데서 악한 소작인들이 있습니다.
대풍년, 다시 말해서 엄청난 소출을 거두었으면서도, 주인에게는 올해 농사가 흉년이라며 쥐꼬리만큼의 소출만을 보내는 악덕 소작인도 있습니다.
빨리 소출을 보내주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알았다 해놓고는, 죽어도 안 보내는 진상 소작인도 있습니다.
더 지독한 소작인이 있습니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서 지주는 자신의 종을 보내기도 하고, 나중에는 아들까지 소출을 받아오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악한 소작인들은 그 아들마저 매질하고 죽인 후 포도밭 밖으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 악한 소작인들은 바로 유다인들이요, 동시에 우리들이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 소작인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단 한번뿐인 인생을 잘 좀 가꾸어보라고, 풍성한 결실을 거두어 보라고 임대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임대 기간이 결코 영속적이지 않고, 길어야 90년 100년입니다.
악한 소작인들처럼 분수 넘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주인 행세를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언제나 나는 잠시 하느님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라는 사실을 잊지 알아야겠습니다.
종이면서 주인인 양 큰 소리 뻥뻥 치고 행세하다가 큰코 다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악한 소작농처럼 처신하다가는 하느님의 강력한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늘 겸손하게, 늘 신중하게, 늘 종이나 소작농의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갈 일입니다.
나를 내 삶의 주인이요 주인공으로 여기고, 가슴을 딱 펴고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주인은 하느님이심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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