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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2-29 조회수 : 490

2024년 2월 29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화가 앨리스 카하나는 15살에 독일군에 의해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이때 앨리스 카하나는 뼈아픈 기억을 하나 만들게 되었습니다.

 

수용소로 끌려갈 때, 앨리스 카하나는 여덟 살인 남동생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신발 한 짝만 신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신발이 벗겨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주의한 동생이라는 생각에 “넌 왜 그렇게 바보 같니! 너 자신의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기니?”라고 소리친 것입니다.

 

수용소로 끌려가며 닥친 혼란 속에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동생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다른 트럭으로 끌려갔고, 그 후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면 과연 미움과 저주의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삶의 끝에 서면 후회되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요? 나의 말과 행동으로 타인에게 주었던 아픔과 상처가 오히려 내게 되돌아와 나를 힘들게 합니다.

 

그런 후회를 더는 만들지 않기 위해 깨어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특히 사랑에 집중하면서 받는 사랑이 아닌 주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후회를 줄여나갈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 심판 때에는 우리가 얼마를 벌었는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사랑의 실천에 얼마나 온 힘을 기울였나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바로 그 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 살면서 온갖 호화로운 생활을 했고, 라자로는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둘의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에 머물고,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 부자가 고통을 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악행을 저질렀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즐겁고 호화롭게 살면서, 가난한 라자로를 보살피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개가 다가와 라자로의 종기를 핥을 정도로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그 무관심이 그를 저승의 고통으로 이끈 것입니다. 또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부자의 이름은 전혀 알 수 없고, 가난한 이인 라자로의 이름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기억하는 사람은 이 세상 안에서 풍요와 안정을 누린 사람이 아닌, 어렵고 힘든 삶을 산 사람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억하는 사람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사랑 실천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더는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가장 지적인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가장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리언 메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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