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20,17-28
그리스도인들에게 야망이 있다면 주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픈 야망이어야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 사도의 어머니께서 예수님께 다가와 두 아들에 대한 인사청탁을 하는 모습을 묵상할 때 마다, 속으로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그리도 오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과 흡사한지, 혼자서 막 웃게 됩니다.
가끔씩 수도원 문을 두드리는 과정에서도 코믹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가끔씩 여성분들이 성소에 대한 문의 전화를 합니다.
저희는 즉시 정확한 안내를 해드립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남자 수도원이어서 남성들만 성소 모임이 오실 수 있습니다.”
“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제 아들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입회 조건이나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사제로 서품되기까지 몇년이나 걸리나요? 해외 유학도 보내주시나요?”
이쯤 되면 어쩔 수 없습니다. 더 칼같이 선을 그을수 밖에요. “어머님, 죄송합니다만, 아드님 본인보고 직접 전화하라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눈을 떠도 아들, 눈을 감아도 아들, 그저 아들 잘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어머니들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야고보와 요한 두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오롯한 일편단심 역시 납득이 갑니다.
그러나 두 사도의 어머니는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조만간 건설하실 왕국은 지상 왕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갈길이 먼 어머니와 두 사도들 앞에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자괴감은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시 예수님께서는 자상하고 친절하게 당신 사명의 핵심을 상기시켜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오 복음 20장 26~28절)
우리 교회는 지상적인 영예와 세속적인 자리를 탐내고 추구하는 출세 제일주의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단체가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누군가가 교회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야심과 출세욕을 충족시키고자 애를 쓰다면,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련한 존재로 추락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권력을 탐하고 추구하는 자는 스승 그리스도를 망신시키고 악용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종교가 한 개인의 야심을 실현시켜주는 도구가 될 때, 주님께서 참으로 슬퍼하고 분노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야망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픈 야망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욕심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과 이웃을 섬기고 싶은 욕심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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