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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2-16 조회수 : 542

2024년 2월 16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예비자들에게 종교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후에 신앙을 버리시는 분을 종종 보게 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종교를 선택했는데, 지금의 불행을 해결할 수 없다면서 기껏 얻은 신앙을 버리시는 것입니다. 큰 병에 걸렸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말씀하십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데 하느님 믿으면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해 주셔야 하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성당 다니는 사람 중에서 너무 미운 사람이 있다면서, 어떻게 성당 다니면서 저럴 수 있냐고 그런 사람도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듭니다.

 

사실 종교로 인해 세상 안에 혼란이 많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교와 구교의 종교전쟁을 비롯한 종교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중세에는 선교를 명목으로 한 식민지 지배도 있었습니다. 최근 탈레반이 저지르는 만행까지 종교인의 잘못은 셀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종교 자체가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잘못입니다. 반대로 신앙생활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생활로 기쁨과 희망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면서 행복해하시는 분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항상 문제는 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를 따르는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 안에서 올바른 가치와 의미를 먼저 찾아야 했습니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워야 종교 잘 믿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행복의 기준 자체를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싸워 이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오히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로지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그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자기 것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에게서 나오는 의미와 가치를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종교인이 되고 맙니다.

단식 논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음을 두고서 잘못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지요. 실제로 당시 경건한 바리사이들은 한 주에 두 번 단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는 형식적인 행위일 뿐이었습니다. 단식의 의미와 가치는 보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을 자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단식의 의미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수난을 동참하는 이유로 단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식으로 절약한 것을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봉헌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주님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따를 수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닌, 주님께서 주시는 가치와 의미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평생 마음을 맞대면서 산다(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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