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9,14-15
단식의 이유가 하느님이어야 하는 이유
오늘 복음은 단신 논쟁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은 단식을 자주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하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인데 그때는 단식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니까 단식은 신랑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도구가 된다는 뜻입니다.
사실 모든 희생은 이웃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도구입니다. 모든 희생은 피 흘림입니다.
피는 생명인데 내가 흘리는 피로 끈끈한 관계가 유지됩니다.
그 대표적인 관계가 부부관계이고 가정이고 나라이며 넓게는 인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남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할까요? 어차피 세상은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희생을 합니다.
그 희생이 자기 자신이 될 때는 행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모르지만,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입니다.
영화 ‘패밀리맨’(2000)에서 주인공은 호화롭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성공한 월스트리트의 경영자 잭 캠벨입니다.
그는 직업적 성공을 위해 개인적인 관계와 가족생활을 희생하면서 자기 경력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잭은 의문의 남자와의 이상한 만남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다음 날 아침 대체 현실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이 새로운 삶에서 그는 더 이상 부유한 사업가가 아니며, 대학 시절 연인 케이트와 결혼한 평범한 교외 가장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으며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방향 감각을 잃고 예전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잭은 점차 사랑, 가족, 일상의 단순한 기쁨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가족의 따뜻함, 부모로서의 도전과 보상, 헌신적인 파트너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이 대체 생활에 더욱 몰입하면서 그는 개인적인 관계보다 자기 경력을 우선시함으로써 자신이 놓쳤던 것의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나중에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게 됩니다.
어차피 고생하는 것으로 따지면 같은데 결국 나 자신을 위해 고생했던 것은 외로운 지옥이었음이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보게 된 것입니다.
모든 행복은 관계에서 옵니다.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지고 사랑은 희생을 전제합니다.
단식은 이러한 희생과 같습니다.
희생의 목적은 소속감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행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내가 속한 공동체만을 위한 희생이라면 그것은 나 자신만을 위한 희생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영화의 주인공이 가정을 위해 사기를 치고 도둑질하며 살인까지 저지른다면 그 가정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고 가족들은 그러한 부모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자신이 하는 희생이 가정을 위한 것이라면 가정을 지켜주는 더 큰 공동체인 나라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법도 지키고 세금도 냅니다.
하지만 오염으로 지구가 멸망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가정을 위한 사랑은 온 인류를 위한 사랑과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가다 가장 큰 공동체를 만나게 되는데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원인이요 모든 공동체의 원인인 하느님과 그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식의 기준이 먼저 신랑이신 당신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도, 나라도, 가정도, 배우자에 대한 희생도 지켜질 수 있습니다.
나라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국가 유공자로서 가정에서도 환영받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희생이 이기적이지 않도록 모든 공동체의 원인이 되는 하느님을 위한 희생이
되게 합시다.
그러면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받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단식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 희생으로 온 인류, 나라, 가정, 배우자를 위한 희생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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