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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2-12 조회수 : 684

사랑은 믿으려는 의지만큼 자기를 드러낸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느님은 사랑이 아니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증거를 보여달라는 말은 상처요 모욕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본성상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눈빛부터 표징입니다.
문제는 사랑해보지 않으면 사랑을 알아볼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나의 사랑이 증가할수록 하느님 사랑을 볼 줄 알게 됩니다.
사랑에는 표징이 있는 게 아니라 수준만 있을 뿐입니다.
그 하는 사람의 수준과 받는 사람의 수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완전하십니다.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목동들처럼 천사를 보게 되고 동방박사들처럼 별을 보게 됩니다.
완전한 표징은 그다음에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 볼 수 있게 됩니다.
바리사이들이 착한 뜻만 가졌다면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착한 뜻이란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자신도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입니다.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은 믿지 못하는 핑계를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둘러댑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을 인식할 사랑이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건축학 개론’(2012)에서 남자 주인공 승민은 자격지심이 있습니다.
자신과 호감을 느끼는 서연이 돈 많고 잘생긴 자기 과 선배를 좋아하고 그 선배에 비하면 자기는 개구리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자격지심의 상징은 그가 입고 있는 가짜 “GEUSS”(진짜: GUESS) 티셔츠입니다.
과 선배와 서연은 승민의 티셔츠를 보며 농담하고 웃습니다.  
 
여기서부터 승민이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찾기 바쁩니다.
사실은 사랑하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괜찮았다가 자기가 자격이 안 됨을 알고는 사랑한다면서 헤어질 준비에 착수합니다.
결국 서연과 과 선배와의 작은 신체접촉을 보고 오해하여 먼저 헤어지자고 말합니다.
그렇게 서연은 이유도 모르게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15년 뒤 이혼녀가 된 서연은 결혼 준비 중인 승민의 건축사 사무실로 찾아옵니다.
자기 집을 지어주겠다던 승민의 약속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승민은 이미 결혼할 상대에게 서연이 “썅년”이었다고 말해놓은 터였습니다. 
 
그런데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요? 사랑해 본 사람은 압니다.
사랑은 눈빛까지 믿겠다는 의지적 결단입니다. 사랑이 부족할수록 그 두려움에 믿지 못할 거리를 찾습니다.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믿지 못할 표징들을 찾는 마음을 가진 승민처럼 말입니다.  
 
사랑할 자격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사랑해보면 그저 믿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표징을 알아보게 됩니다. 
 
사랑의 표징을 알아보지 못할 수 없습니다.
동방박사처럼 믿는 만큼 하느님은 더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사랑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다 내어주는 사랑은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사랑의 수준에 따라 순차적으로 내어줍니다.
그러니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표징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자격 없는 존재로
머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표징보다 의심 거리를 먼저 찾습니다.  
 
사랑할 자격은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얻어집니다. 그래서 구약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준 것입니다.
사랑하겠다는 결단이 내려졌다면 이제 믿는 것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점점 더 보여주십니다.
사랑은 믿기로 결단한 그 사람의 의지만큼 자신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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