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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2-11 조회수 : 570

복음: 마르 1,40-45: 그는 나병 증세가 사라지면서 깨끗이 나았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다. 실제로 나병은 육체를 기형적으로 바꾸고 잠재적으로 전염성을 갖기 때문에 무서운 공포를 주는 병이다. 유다인들에게 있어서도 나병은 가장 고통스럽고 혐오감을 주는 병이었다. 레위기에도 나오지만, 나병에 걸리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철저히 격리되어 아무에게도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레위 13,45-46). 떠돌아다니는 시체에 불과했다. 그들은 하느님과 인간들에게 저주받은 자들로 여겨졌다. 이 나병환자의 간청을 듣고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께서 버림받은 인간에 대해 가지신 연민과 느끼신 고통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41절) 라는 말씀의 연민은 바로 뱃속까지 자극하는 고통의 의미이다. 그 고통은 그 나병환자가 현실적으로 당하는 불의한 사회적 상황 때문에 더 컸을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 나병환자에 대시며(41절) 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시지만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된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41절)는 말씀은 그를 온통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같은 치유의 기적을 이룬다. 이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같은 체험 때문에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 체험을 널리 선전하여 퍼뜨리고 있다(45절). 
 
예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그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지 말라고 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제들에게 가서 보이고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44절) 레위기의 규정대로 나병으로부터 깨끗해진 데 대한 감사의 예물을 바치라고 명하신다. 이것은 우선 우리가 항상 하느님의 은총 앞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감사의 표현은 말로써 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먼저 감사의 표현을 하여야 하겠고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것으로 참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될 수 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마 이 병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었어도 다시 사회에 복귀하기까지는 또 다른 검증과정을 통해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러기에 그 기억은 예수님께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이 나환자를 통하여 장차 당신에게 닥칠 야훼의 고통받는 종, 즉, 나병환자처럼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천대받아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갈 만큼(이사 53,3-4)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될 운명을 예견한 것이다. 당신이 행하시는 사랑과 정의에는 관심이 없고 불결과 깨끗함을 가리는 논쟁에만 힘을 소비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어갈 구실을 마련하려고 하여 당신이 베푸시는 사랑의 행위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내적인 아픔의 표현이라 하겠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병을 고쳐주기 위해서 손을 갖다 대는 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의 다른 행위가 필요치 않다. 그러나 그 기적이 완전한 것이 될 수 있으려면, 인간 사이의 혹은 민족 사이의 갈등과 경계가 모두 극복되어 한 형제가 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또 예수께 그 기적 후에 많은 사람이 떼를 지어 몰려가지만, 그분은 백성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또 한 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된다. 지금의 모든 가르침은 오로지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서 충만하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비밀에 싸여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메시아의 비밀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의 선교 사명이 자칫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니즘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자칫 현세적인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일 때, 그것은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이러한 기복적인 신앙을 벗어버리고 진정으로 나 자신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그래서 우리의 자제와 희생이 요구된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10,31-11,1). 이것을 나병환자의 치유에 적용해 볼 때,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평범한 생활 테두리를 넘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길 때에도 기꺼이 수락하면서 우리의 사랑의 행위를 펴나가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도움을 간절히 청했던 나환자에게 손을 대시어 치유해 주신 예수님과 같이 그리고 모든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초대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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