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7,24-30: 강아지도 빵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티로 지방으로 가신다. 여기서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은 끈질긴 간청으로 주님의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예수님은 마귀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어머니를 만나 그 간청을 들으신다. 마귀 들려 고생하는 자기의 딸을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27절). 당시 희랍인들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여인을 개라고 불렀고,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을 경멸하는 말로 개라는 표현을 하였다. 예수께서는 당시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을 사용하셨던 것 같다. 이것은 그 여인의 믿음을 보려고 하셨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여인의 대답은 어떠했는가? 그런 말씀에 하나도 섭섭함이 없이 오히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28절) 한다. 얼마나 여유 있고 부드러운 마음의 태도인가? 마치 유다인이 다른 민족들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은 어떠했는가? 우리가 우리의 원의를 갖고 기도할 때에 얼마나 조바심을 해왔고, 또 귀에 거슬리는 처사나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을 때 이 여인의 모습보다는 화를 낸다든지, 즉시 그 사람을 향하여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욕을 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 여자는 은총을 얻기 위하여 강아지라는 칭호마저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어머니로서 딸을 위하여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자세로 예수님께 간청하고 있다. 이것이 또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태도를 칭찬하셨고 딸을 치유해 주신다.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감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29절) 하셨다. 이 여인의 자세,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우리의 이웃 앞에 갖추어야 할 기도의 자세이며, 신앙인의 자세다. 우리 자신이 이제는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업신여긴다든지, 무시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는 귀중한 사람들이며, 그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주님을 믿고 따르며 참으로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사는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주님께 나아가며, 주님을 이웃에게 전해줄 수 있는 우리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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