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
기도는 악을 물리치는 힘의 원천
[말씀]
■ 제1독서(욥 7,1-4.6-7)
사후의 상선벌악(賞善罰惡) 사상에 아직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고통을 죄의 결과로 받아들였던 기원전 5세기의 유다인들을 거슬러 욥기의 저자는 고통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거부한다. 다시 말해서 지상생활에서 의(義)는 늘 행복으로 보상되고 악(惡)은 언제나 불행을 이끌어 들인다는 현세적인 상선벌악 사상에 도전한다. 부당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의인 욥은 선과 악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적 한계를 고백함과 아울러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표명한다.
■ 제2독서(1코린 9,16-19.22-23)
사도 바오로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주의적이던 종교 세계에 몸담고 있다가 회심한 바리사이파 사람이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깊이를 깨닫고서 그 사랑에 심취하여 복음 전파를 위한 사도로서의 길을 택한다. 바오로는 특히, 오늘 제2독서가 잘 묘사하고 있듯이, 부족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에 옮기기 위해 형제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자신을 얼마든지 낮출 수 있음을 고백한다.
■ 복음(마르 1,29-39)
온갖 병자를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장면 속에서 그리스도는 악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악을 거슬러 싸우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분의 능력은, 인간적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늘 당신을 보내신 성부의 뜻을 기도를 통해 살피시는 모습, 성부께 온통 열려 있는 모습, 결국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하고 말씀하시며 성부의 뜻을 실천에 옮기시는 모습 속에서 빛을 더한다. 치유로 인한 즉각적인 반응에 들떠 있던 제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이 되었을까?
[새김]
■ 복음을 전함으로써 형제를 구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낮출 수 있고 어떠한 고통도 감수할 수 있다는 바오로의 투철한 선교 정신이 너무나 고맙고 아름답다. 율법의 노예처럼 처신할 수 있고, 율법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고, 나아가 믿음이 약한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 현세적인 어떤 고통과 시련이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있었겠는가? 그 고통과 시련이 욥에게서처럼 부당하게 보였을지라도 말이다.
■ 말씀으로 가르치실 때나, 그 말씀이 하느님에게서 나온 말씀임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기적을 행하실 때나, 그리스도는 먼저 기도로 당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살피신다. 기도로 그분은 성부의 뜻을 확인하시고, 기도로 힘을 되찾아 “그곳에도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끊임없는 선교의 길을 걸어가신다. 우리도 주님처럼 즉각적이며 시각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그저 우리의 모든 것이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감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차피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니 말이다.
기도로 믿음을 다지고 그 믿음을 실천으로 드러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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