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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3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31 조회수 : 659

예전에 갑곶성지에 살 때는 식복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식사 준비를 비롯한 주방 일, 빨래, 청소 등을 모두 저 스스로 해야만 했습니다. 주방 일이나 빨래는 할 만했고, 또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자매님들이 이런 말씀 종종 하시지요.

 

“치워도 티가 나지 않고, 치우지 않으면 금방 표시가 난다.”

 

저 역시 청소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청소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청소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실제로 바빠서 청소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터 먼지가 방 안에서 굴러다니는 것을 볼 정도로 지저분해집니다.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을 실천한다고 해서 티가 팍팍 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오히려 이 사랑을 어리숙함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티가 많이 납니다. 사람들의 평가도 곧바로 나오지요. 이기적이고 욕심이 너무 많다면서 각종 비판이 쏟아집니다. 이 비판을 받는 사람은 억울합니다. 왜 자신이 실천한 사랑은 알아주지 않느냐고 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앞서도 말했듯이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하는 사랑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홀히 보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사랑을 보고 계시고, 당신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티가 나지 않는다고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청소도 티가 나지 않아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사랑도 티가 나지 않는다고 포기할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내 영혼이 엉망진창으로 바뀌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도 머물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말씀하셨고, 당신 몸으로 사랑을 직접 실천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특히 그래도 예수님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지요. 또 병자를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신 것 역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모두가 사랑을 보여 주시고, 또 실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왜 이렇게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예수님의 사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더 낫다는 교만함이 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줍니다.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곳에서만 은총이 가득히 흘러넘치게 됩니다.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수님의 은총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슬픔은 혼자서 간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쁨이 충분한 가치를 얻으려면 기쁨을 누군가와 나누어 가져야 한다(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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