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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30 조회수 : 734

마르코 5,21-43 
 
쉬운 사람 
 
 
10여 년 전에 저의 작은 형이 ‘투다리’라는 닭 꼬치 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일을 좀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거의 항상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는 매우 잘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도와주다보니 가게가 매우 더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쾌쾌한 냄새는 둘째 치고, 이제야 밝히는데, 주방 여기저기로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형은 그것들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서 죽였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미식거립니다. 
 
한 번은 쥐를 잡으려고 약을 천정에 올려놓았는데 고양이만한 쥐가 그 약을 먹고 비틀거리다가
한 여자 손님이 소변을 보고 있는 앞으로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그 앞에서 손님을 쳐다보며 눈싸움을 하다가 시간이 꽤 흘러 쓰러져 죽었습니다.
손님은 나오지도 못하고 오랜 시간 그 쥐와 눈싸움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저는 가게를 좀 더 깨끗하게 하자고 했지만 형은 너무 깨끗해지면 손님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더러운 것이 가게 이미지라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손님을 포함해서 많은 손님들이 이 지저분한 가게를 계속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하나 완전한 사람이 없고 그 부족함 때문에 완전한 사람 주위에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기가 편한 것입니다. 
 
어차피 술을 마시고 조금은 망가지는 사람들이기에, 너무 깨끗하여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형은 가게도 조금은 망가진 모습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저도 고해성사를 볼 때 매우 무서운 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일미사 빠진 것 때문에 그렇게 야단을 맞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분은 고해 중간에 십계명을 외워보라고 하고, 대죄가 어떤 것들이 있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하셨습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저는 다시는 그 분께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 신부님들이 대부분 좀 무서운 분들 같아서 청년 때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학 가서 저의 지도 신부님을 만나고는
‘사제가 저렇게 편할 수도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너무 겸손하고 가난하시고 농담도 잘 하셔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팬티가 보이도록 다 뜯어진 바지를 입고 오셔서 저희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옷을 입으시면서도 꼼꼼히 살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부족한 면이 저희가 편하게 그 분께 다가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성으로나 학적으로나 굉장히 뛰어나고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편하시면서도 배울 것이 많아서 그런지 저를 포함해 너무 많은 학생들이 그 분께 논문을 쓰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시나이 산에 거하시는 줄은 모두가 알았지만 그 주위의 불과 구름, 천둥과 번개 때문에 무서워
감히 범접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오로지 모세만 시나이 산에 올라가 그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조차도 그 분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죄 많은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거룩하고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분께 어떻게 다가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분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이 피조물의 옷을 입으신다는 것은 당신 자신을 너무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 분께 몰려들고 또 하혈병이 걸린 여인까지 겁 없이 그 분의 옷을 만질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하혈병이 걸린 여자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도 안 되는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왜 예수님께서 이 일의 증인이 될 제자 셋만 데리고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 들어가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또 왜 죽은 사람을 살리신 사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목숨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밖에는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예수님을 또다시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다가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들까지도 같이 다니면서 그 분께 말 걸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사람들이 쉽게 다가와 죄를 용서받고 병을 고치고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가오기 쉬운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에 무리가 되는 것들은 감추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당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렇게 보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저도 한 사제로서 가끔은 신자들이 저를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쉬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들도 선교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다가오기 편한 사람들이 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편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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