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5,1-20
오늘도 우리는 부단히 건너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주님 부재 상태에서 주님 현존 상태로!
갈릴래아 호수 동편에는 이방인들 가운데 게라사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율법의 규정에 따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던 돼지를 떼로 키우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 더러운 영을 추방하는 능력을 발휘하셨는데,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주님 부재와 현존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뚜렷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습니다.
그 사람은 이 세상으로부터 추방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다 보니 공동묘지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그에게 붙은 악령은 한둘이 아니라 수백, 수천이었습니다.
그래서 악령의 이름이 특별하게도 군대였습니다.
한 사람 안에 수많은 악령이 들어있다 보니, 수시로 발작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폭력적이다 보니 발에 족쇄를 채우고, 손은 쇠사슬로 묶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괴로웠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밤낮으로 무덤과 산으로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는 자해행위뿐이었습니다.
한 인간 존재가 주님 부재 시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공동체가 주님 부재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중심에 계셔도 부족한 판인데, 다양한 우상들, 이런저런 악령들이 떡 하니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부재하실 때, 즉시 그 자리에는 악한 영이 자리를 은근슬쩍 자리를 잡습니다.
그 순간 우리의 현실, 우리 공동체의 현실은 얼마나 음산하고 비참한지 모릅니다.
마치도 칙칙한 무덤 분위기입니다.
주님의 현존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다 보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차하면 소리소리 지르고 으르렁댑니다.
별것 아닌 일에 핏대를 올리고 폭력이 난무합니다.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경우에는 사슬이나 족쇄가 필요합니다.
극한 분열과 대립으로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은혜롭게도 군대라는 악령이 들린 사람은 죽기 일보 직전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악령 들린 사람을 가엾이 여기시어, 말씀 한 마디로 그에게서 더러운 영들을 쫓아 내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니, 분위기는 순식간에 변화되었습니다.
음산하고 칙칙한 죽음의 분위기에서 화사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즉시 반전되었습니다.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 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오늘도 우리는 부단히 건너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주님 부재 상태에서 주님 현존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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