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1,21-28: 예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담긴 새로움과 권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권위 있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신명기에서 약속된 모세의 뒤를 이어 봉사할 예언자(신명 18,18)와 연결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빵의 기적 후에 군중들이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요한 6,14)라고 하고 있다. 복음에서 군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행동을 통해 놀라운 체험을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동과 말씀이다.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르치고 계신다는 사실과 가르치시는 방법에서 시작된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22절) 예수님은 랍비 학교에 다니지 않았는데도 권위 있게 말한다는 사실 때문이다(참조: 요한 7,15). 예수님께 느끼는 권위는 예수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불처럼 타올라 사람들에게 제시되는 새로운 요구에 근거한다. 새로운 것은 당신의 말씀과 행동이 일치되어 있으며, 우리 신앙인들에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다는 또 다른 이유는 그분의 말이 즉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며, 또한 사탄의 세력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회당에서 악령 들린 사람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놓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갔다"(24-26절). 이것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사탄의 세력과 격렬하게 맞서신 사건이다. 사탄은 예수님의 말씀 위력에 눌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탄은 즉시 예수를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며 소리친다. 이 칭호는 후에 베드로 사도에 의해 고백 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요한 6,69).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인간 생활에 들어오심은 인간에게 인간 자신의 죄스러움을 알게 하고, 자신의 본 모습을 발견케 한다. 여기서 예수님은 사탄의 고백을 허락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신다.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하지만, 예수님과 자신 사이에 장벽을 쌓기 때문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자신의 왕국을 파괴하러 오는 원수로만 느낄 뿐이지, 사랑으로 자신을 기쁘게 복종시켜야 할 주님으로는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에게 나가라고 명령하신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놓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갔다."(25절)
예수님은 당신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악령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신다. 그 사람은 완전히 자신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사탄이 그 사람의 인격을 분열시켰다. 사탄에게 매여 있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멀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그 사람과 같이 인격이 분열된 것과 같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실천을 통해 치유되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군중들은 깜짝 놀란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27절). 이는 그리스도가 누구냐는 데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사건으로 예수께 대한 관심이 점점 증대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나갔다."(28절).
사도 바오로는 새 교훈으로 동정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순전히 영성적이다. 결혼한다면 마음이 갈라질 수 있지만, 동정을 지키면 마음이 갈라지거나 정신이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모든 것과 전 존재를, 사랑을 온전히 주님께 바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정을 지키는 것은 아내나 남편이나 자기 형제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형제에게 베풀어야 할 더 큰 사랑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때문에 동정성은 마음을 더 넓게 해 주는 것이지 결코 더 좁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마태 19,12) 하셨다.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 안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그분의 권위 앞에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의 대변자이며 선포자의 역할을 지상과제로 삼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권위가 있게 말씀을 증거해야 한다. 그 권위는 다양한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한 가운데 참된 봉사를 통하여 나오는 것임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말씀과 업적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을 따라 권위 있게 복음을 전할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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