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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23 조회수 : 785

마르코 3,31-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가족 공동체 
 
 
어떤 청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성당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친구들을 대할 때, 가족을 대할 때의 저의 모습이 다 달라요.
특히 가족을 대할 때 가장 나빠져요.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잘 하고 칭찬받는데 가족들에게는 짜증내고 투덜거리고 막 그래요.
뭐가 문제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 인간으로서의 핏줄보다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이들이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모두 당신 친 핏줄처럼 가족처럼 여기고 계신 것입니다.
가족처럼 여긴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 ‘연탄길’에 소개된 ‘아빠의 눈물’을 읽어보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 
 
명지가 열여섯 살 때였다.
명지네 가족은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강릉경포대로 갔다.  
바다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물 위를 비행하는 갈매기들의 모습이 은빛으로 출렁거렸고 바다 끝 수평선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푸른빛으로 넘실거렸다.
아름다운 나흘을 보내고 마음은 그대로 남겨둔 채 명지 네는 경포대를 떠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폭우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명지네 가족은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 사고로 명지는 다리를 많이 다쳤다 .
그날 이후로 명지는 두개의 보조다리 없이는 몇 걸음도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불행은 명지 하나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명지보다는 덜했지만 명지 아빠도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명지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명지아빠는 하시던 약국을 계속 경영했다. 
 
명지는 사춘기를 보내며 죽고 싶을 만큼 열등감에 시달렸다. 
명지가 밥도 먹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 위안이 되어준 사람은 명지 아빠뿐이었다. 
 
명지의 엄마도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었지만 정상인인 엄마가 해주는 위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정신까지 절룩거리는 명지에게는 엄마의 사랑으로도 끌어안을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 
아빠는 말할 수 없는 명지의 아픔까지도 낱낱이 알고 있었다. 
 
길을 다닐 때 명지는 사람들이 동정 어린 눈빛이 싫어서 땅만 쳐다보며 다녔다.
어느 겨울엔가는 얼어붙은 땅 위를 걷다가 미끄러져서 얼굴이 온통 까진 채 아빠의 약국으로 간 적도 있었다. 
명지는 아빠의 품에 안겨서 울었다. 
 
"아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는 게 너무 싫어 ."
"명지야 , 아빠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사랑 같은 거야.
그걸 알고 나서 아빠는 오히려 그들의 눈빛이 고맙기까지 한걸." 
 
명지 아빠는 조심스럽게 명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약을 발라 주었다.
명지 아빠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아빠는 우리 명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명지야, 아빠 말 잘 들어 봐.
물론 아빠나 명지가 어쩌면 그들보다 더 불행할지도 몰라.
그렇지만 우리의 불행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위안을 받을지도 모르잖아.
그렇다면 우리야 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거구.....
명지야, 조금만 더 견뎌. 아빠가 네 곁에 있잖아." 
 
그 후로도 명지 아빠는 명지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명지를 지켜 주었다.
아빠의 사랑으로 명지는 사춘기를 넘기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 입학식 날, 아빠는 명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명지도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입학식장에서 아빠는 두개의 보조다리에 몸을 기댄 채 가슴 가득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입학식을 끝내고 나올 때 그들의 눈앞에서 아주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차가 다니는 도로 쪽으로 어린 꼬마가 뛰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걸어가던 명지의 아빠는 그 아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명지의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명지아빠는 보조다리도 없이 아이를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명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아빠가 아이를 안고 인도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빠?"
명지는 너무 놀라 소리쳤지만 아빠는 못 들은 척 보조다리를 양팔에 끼고 서둘러 가벼렸다. 
 
"엄마? 엄마도 봤지? 아빠 걷는 거........."  
명지 엄마의 얼굴은 담담해 보였다. 
 
"명지야, 놀라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 .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아빠는 사실 보조다리가 필요 없는 정상인이야. 
사고 났을 때 아빠는 팔만 다치셨어. 
 
그런데 사 년 동안 보조다리를 짚고 다니신 거야 .
너 혼자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고.....
성한 몸으로는 아픈 너를 위로할 수 없다고 말야." 
 
"왜 그랬어? 왜 아빠까지......"  명지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지 마,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아빠는 견디지 못하셨을 거야.
불편한 몸으로 살아오셨지만 너를 위로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는데 오늘은 그 어린 것이 교통사고로 너처럼 될까봐서...." 
 
멀리 보이는 명지 아빠는 여전히 보조 다리에 몸을 의지한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빠를 보고 있는 명지의 분홍색 파카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내렸다.  
마음이 아픈 날이면 명지는 늘 아빠 품에 안겨서 울었다.
소리 내어 운 것은 명지였지만 눈물은 아빠 가슴속으로 더 많이 흘러 내렸다. 
 
저도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 어머니에게는 투덜거렸던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과 가족에게 대하는 나의 모습이 다른 이유는 내가 이중 인격자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투덜거리면 다 내가 싫다고 달아나버리겠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을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가족, 그 울타리에서는 내가 마음을 놓아도 되는 유일한 공간이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받아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입니다. 
 
그 공간이 없으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다시 회복하기가 불가능 할 것입니다.
그 따듯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인 바로 부모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자녀들의 감사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이런 가족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도 우리처럼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신 것입니다.
마치 명지의 아빠가 명지를 위해 목발을 짚어준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을 가족으로 만들고 싶으면 누군가는 먼저
그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우리도 우리가 속해 있는 사람들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참 가족으로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참으로 우리가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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