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는 사람이 휘두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나 악령에게 절대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사람들이 기적을 얻으려고 그분 옷에 손을 대려 하자 예수님은 배에 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악령들도 그분만 보면 달려들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악령 들린 칭찬은 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허락 없이는 칭찬도 하지 못하게 막으십니다.
자유는 인간 존엄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런 이유로 에덴동산에 선악과도 있었고 뱀도 있었습니다.
저절로 생겨난 것들이 아니라 주님께서 마련하신 것들이었습니다.
뱀은 특별히 인간의 자유의지를 상징합니다.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창세 3,1)
뱀은 타락한 천사라기보다는 주님께서 어떤 연유로 인간이 유혹받음을 가능하게 하도록 창조하신 동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마치 뱀을 밟은 성모님처럼 뱀의 유혹을 하찮게 여겼어야 합니다.
어쨌건 하느님은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인간에게도 당신을 배신할 자유를 주셨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게도 휘둘리지 않으셨기에 사람들을 마구 휘두르는
분이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야말로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줍니다.
성경에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죽일 생각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휘둘려 그 일을 합니다.
그런 헤로데와 같이 우유부단한 사람이 타인의 자유를 무시하는 독재자가 됩니다.
차르 니콜라스 2세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입니다. 그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폭군이었습니다.
그의 제관식 때 3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압사당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1905년의 피의 일요일 사건도 유명합니다. 노동자와 그 가족을 포함한 평화로운 시위자들은
니콜라스 2세에게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으로 행진했습니다.
시위자들은 더 나은 근무 조건, 더 많은 개인의 자유, 선출된 국회의원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황실 근위대가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해 천여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러일 전쟁이나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는데 많은 군인이 죽는 것 외에는 얻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폭군은 정말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을까요?
그 반대입니다.
그는 아내 알렉산드라와 라스푸틴이라는 정교회 수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알렉산드라가 낳은 유일한 아들이 혈루병을 앓자 신비주의에 빠진 아내가 폭력적이고 음란한
라스푸틴을 소개합니다.
니콜라스는 알렉산드라와 라스푸틴이 은밀한 관계라는 소문이 이는 데도 불구하고 아들을 살리자는 희망으로 그들의 모든 뜻에 복종합니다.
그렇게 러시아 왕국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라스푸틴은 물론이요 티콜라스 2세와 일가족은 모두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무언가 잃을 것이 있으니 휘둘립니다.
잃을 게 없는 이만 자유롭고 자유로운 이만 자유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있는 이는 자기 자유도 잃고 타인의 자유도 빼앗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아내와 아들 때문에 모든 것을 빼앗고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이 세상에서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 인물을 그렸습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가진 것은 목숨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의 자유를 위해 싸웠습니다.
이런 사람이 오히려 타인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유의 귀중함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휘두르려 할 때도 ‘노’(No!) 하며 모든 결정을 자기 자유의지로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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