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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5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15 조회수 : 727

단식은 위로부터 오는 은총을 준비하는 작업입니다! 
 
 
단식 이야기만 나오면 돌아가신 한 선교사 신부님 얼굴이 떠오릅니다.
체구가 크셔서 그런지 드시는 것을 엄청 좋아하셨습니다.
굉장히 낙천적이고 유머 감각도 탁월하셨습니다. 
 
자주 사용하시던 농담도 기억납니다.
“짧으면 짧을수록 좋은 것은?
강론입니다. 
 
길면 길수록 좋은 것은 맛있는 소시지입니다.
둘이 뒤바뀌면 최악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음식을 절제해야 하는 사순 시기만 되면 무척 힘들어하셨습니다.
한번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피정 강의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순 시기에도 우리 살레시안들은 잘 먹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제 머릿속은 큰 혼란의 소용돌이가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잘 먹고, 그 힘으로 더 아이들을 사랑하고, 더 운동장으로 자주 나아야 합니다.” 
 
교회의 규정에 따라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단식을 철저히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식하는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단식의 배경에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식과 성덕은 늘 함께 가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단식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느님 가까이 서 있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단식은 영혼이 육체를 통제하고 지배함을 뜻합니다.
단식은 위로부터 오는 은총을 준비하는 작업입니다.
단식하는 동안 한 인간은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은총에 민감해집니다. 
 
단식을 통해 한 인간은 악과 유혹을 억누르고 영혼을 드높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축일 전에 신자들을 단식에로 초대했습니다.
영성가들은 단식을 통해 자신의 육체를 단련시키고 영적으로 성장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이토록 단식이 영성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단식과는 별로 상관없이 살아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르 2,18)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대답, 너무나 뜻밖인 대답이었습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르 2,19-20) 
 
예수님 당신이 지상에 머무시는 기간은 하느님과 인류가 혼인을 맺고 잔치를 벌이는 시간임을 선포하십니다.
혼인 잔치 기간에 어울리는 것은 음주나 가무, 노래와 축제이지, 단식이나 고행, 슬픔이나 곡소리는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따라서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즐겁고 유쾌해야 합니다.
갖은 인상을 다 쓰면서 단식할 것이 아니라,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먹고 마시고 즐겨야 할 것입니다. 
 
다만 혼인 잔치가 끝난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 가셔서 신부의 집을 마련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로 선정된 교회는 아직 결정적으로 신랑의 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는 강생과 종말 사이, 첫번째 오심과 재림 사이에 끼어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는 기쁨과 슬픔, 획득과 미획득, 축제와 단식이 거듭 교차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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