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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12 조회수 : 772

마르코 2,1-12   
 
미운 사람이 없다면, 이제 기적을 기대해도 좋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들것에 데려온 중풍 병자를 치유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죄를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는데 인간이 죄를 용서해주니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알게 해주겠다며 그를 치유해주십니다.  
 
여기에서 병의 치유나 죄의 용서는 거의 동의어로 쓰입니다. 그리고 같은 권한으로 그 일을 한다고 하십니다.
이 권한은 ‘성령’의 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웃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다면 동시에 타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도
지닐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도 타인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의 권한은 하느님에게 있기에 우리도 자녀로서 그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없는 게 무엇일까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면 기적도 기대해야 합니다.  
 
1993년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된 에밀 카파운(Emil Kapaun) 신부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체코 이민자의 아들로 미군 군종 장교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분입니다.
그분은 한국 전쟁 당시 이미 성인으로 불릴 만큼 군인들의 진정한 아버지였습니다. 
 
대피하라는 소리를 듣고도 그는 뒤에 쳐진 군인들을 구하느라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중공군 포로가 되어 1951년 35세의 나이로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는 절망하는 군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그가 목숨을 구한 사람 중 한 명인 허버트 밀러 하사는 부상을 입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한 공산주의 군인이 소총으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카파운 신부는 달려가서 그 중공군을 옆으로 밀고 밀러 병장을 구해냈습니다. 
 
그 군인은 두 사람을 모두 죽일 수도 있었지만, 카파운 신부의 용기와 사랑에 놀라 움직이지 못하였습니다.
죽음의 행진이 이어졌습니다.
낙오하거나 계속할 수 없는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카파운 신부는 부상자를 끝까지 부축하여
수용소까지 도착하였습니다.
그 병사는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카폰 신부는 그 모든 병사에게 어머니와 같았습니다.
그는 배급을 보충할 음식을 얻기 위해 캠프에서 몰래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는 동료 병사들을 이질로부터 구하기 위해 물을 끓일 수 있도록 금속 조각으로 그릇을 만드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옷을 빨곤 했습니다.
그는 비밀리에 미사를 거행하곤 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가 동료 수감자들에게 가져다준 희망 때문에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몇 시간 동안 벌거벗은 채 혹독한 추위 속에 서 있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아프게 되자 그들은 그를 제거할 기회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그를 죽음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을 자신들의 병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군인들은 그분을 끌고 갈 때, 그분의 군사들은 울부짖으며 자기들의 사제를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항상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갈 것입니다.
내가 거기 도착하면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은 그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카파운 신부는 1951년에 포로 생활 중에 사망했지만, 그의 유산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의 동료 수감자 중 다수는 그의 영적 지도력과 보살핌 덕분에 자신들이 살아남았다고 여겼습니다.
그가 죽은 후, 특히 그의 도움을 간구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에게 한 기도로 기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2008년 장대높이뛰기 연습 중 사고를 당한 캔자스 출신의 대학 운동선수인 체이스 키어(Chase Kear)와 관련된 것입니다.
심각한 머리 부상에서 키어가 회복될 가능성은 의학적으로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인 키어 가족들은 카파운 신부의 중재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체이스의 놀랍고 빠른 회복은 나중의 가톨릭교회에서 카파운 신부의 하느님의 종과
시복식을 위한 기적 사례의 일부로 제시되었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힘, 곧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기적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카파운 신부처럼 자신을 죽이는 이들도 용서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그에게 기적의 흔적도
남겨주십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여자 주인공은 사형선고 받은 남자를 살리기 위해 자기 어머니와 자신에게 못된 짓을 했던 친척 오빠를 용서합니다.
물론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통해서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기적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그 기적을 일으키시는 성령을 받기 위해 용서의 기적부터 일어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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