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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7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07 조회수 : 652

복음: 마태 2,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제2의 성탄이다. 그것은 주님의 탄생 신비에 대한 몰이해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주님의 탄생을 세상에 선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유다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한 몸의 지체가 되도록 불림을 받은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오신 분이다. 이렇게 주님의 공현은 성탄의 신학적 내용을 확대해주고 깊게 해 준다. 
 
오늘 박사들에게 나타난 별은 그들의 대화에 있어서 주인공 역할을 한다. 그 별은 그들 여행의 안내자 역할 외에 더 나아가 그들을 꼼짝 못 하게 이끄는 자석과 같다. 오늘의 전례는 예루살렘 대신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인다. 이제 예수를 중심으로 모든 일이 일어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땅끝까지 쏟아부어야 할 새로운 예루살렘은 교회이다(교회 1항). 
 
교회의 기본적 사명은 복음 선포와 교회 각 지체의 삶을 통해 세상에 그리스도의 공현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방인의 세계를 대표했던 동방박사들은 완전한 자격으로 교회에 들어왔다. 반면에 유다인들은 불행히도 교회 밖에 머물러 있다. 예루살렘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베들레헴이 메시아의 탄생지라는 것을 가르쳐 줄 줄은 알았지만, 메시아께 경배드리러 가지는 않았다. 
 
복음에는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을 찾고 있다. 이때 헤로데가 당황하고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 여기서 헤로데는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가 탄생할 곳이 어딘가를 알아본 뒤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웠고,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만나 경배한다(마태 2,4-12 참조). 
 
오늘 복음은 너무나도 놀라운 역사적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누구이며, 몇 명이고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가 아니다. 복음은 가까이 있다고 하는 이들, 즉, 유다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헤로데처럼 그를 해칠 계략을 짜지만, 멀리 있는 이들, 즉, 이방인들은 신앙의 빛의 자극을 받아 예수께서 비록 가난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그분을 찾고 알아본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리고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11절). 
 
복음에서 별은 동방박사들을 예루살렘에까지 인도한 후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아기가 있는 곳 위에”(9절) 머문다. 이 별은 하나의 혜성으로도 생각했지만, 그 별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그 별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신앙의 내적 빛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요한 6,44 참조) 우리는 그분을 알아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 
 
둘째로 마태오는 별의 표징 아래 나타날 메시아를 예언했던 발람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민수 24,17). 이제 구약의 계약이 나자렛 예수를 통해 실현되고, 그분의 빛은 이미 온 세상에 빛난다. 왜냐하면, 이교도들도 신앙을 통해 그분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사들이 길을 떠났을 때, 동방에서 본 별이 다시 나타나 아기가 있는 집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고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였다(9-10절). 그들이 기뻐한 이유는 그것이 대단한 수고를 치르고 얻은 기쁨이고, 오랜 싸움 끝에 얻은 기쁨이며, 때로는 실망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얻은 기쁨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신앙 안에서 갖는 여러 가지 체험들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쉽게 이루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계시하신 뒤 감추심으로써 당신을 다시 찾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공현축일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빛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빛나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을 찾기 위해 동방박사들처럼 오랫동안의 고달프고 때로는 실망을 가져다주기까지 하는 여정을 끝내 달릴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만 밝게 빛나시는 분이시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12절). 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그 빛을 받아 널리 퍼져나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헤로데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폭군에게 그리스도를 살해할 구실을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다시 어두움 속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예루살렘에서는 그 별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헤로데와 예루살렘에는 그리스도의 빛이 스며들 수가 없다. 만일 빛이 스며든다면 모든 것이 붕괴한다. 왜냐하면 “숨은 생각들을”(루카 2,35)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사들의 나라 동방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미 빛이 스며들어 그 빛을 더욱더 널리 확산시켜나갈 수 있다. 예루살렘보다도 동방에서 그 빛이 더 강하게 퍼져나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빛에서 빛으로”(2코린 3,18) 옮아간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밝은 빛처럼 변화시켜 더욱더 깊게 그리스도의 빛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또한 영원한 영광중에 결정적으로 드러내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뵙기를 갈망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주님을 직접 뵙게 되는 그곳에서 주님의 공현은 영원히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항상 찾아 만나 뵙게 되는 것은 주의 공현의 의미를 사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가능함을 잊지 않고 순간의 삶을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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