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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3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03 조회수 : 680

요한 1,29-34 
 
나는 그분을 위해 기쁘게 무대 뒤로 물러섭니다. 형체도 없이 사라집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다가오시자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위 문장에서 우리는 특별한 단어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코스모스(Cosmos)입니다.
‘세상’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질서’라는 의미도 지닙니다. 
 
요한 복음에서 코스모스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의 극단적 자기 중심주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의 그릇된 질서입니다.
위의 세상이 아니라 아래 세상의 질서입니다. 
 
그 세상은 인간의 그릇된 이기심이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입니다.
결국 극복되어야 할 세상의 질서입니다. 
 
이런 세상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때가 이르자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외칩니다.
“세상이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상의 죄’는 결국 우리 인간의 이기심이며 자만심입니다.
세상의 죄는 인간 각자의 개인적인 죄를 넘어서는 죄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분을 적대시하는 세상의 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인류, 상처입은 인간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어린양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어린양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다는데, ‘없애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치워 버리다.’는 일차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보다 깊은 뜻은 ‘짊어지다.’입니다.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결국 우리 인간 각자의 죄, 세상의 죄, 집단적이며 구조적인 죄를 당신 어깨 위에 짊어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 양”이라 외치며, 머지않아 우리들의 모든 죄를 자신에게 짊어진 후, 묵묵히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걸어갈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암시하고 예언한 것입니다. 
 
주인공이신 예수님, 세상을 구원하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보다 확연히 드러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정말 눈물겹습니다. 
 
그분을 위해 자신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하나의 불쏘시개가 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의 영예나 체면, 백성들의 관심과 박수갈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도록, 한 줌 재로 산화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정녕 감동적입니다. 
 
요즘 또 다시 교회 인사이동 시즌입니다.
다른 임지로 떠나가시면서 걱정이 많은 분들도 계시겠지요.
내가 떠나가면 여기 이곳은 어떻게 될까?
그간 공들였던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좀 더 남아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돌아보니 저도 젊은 시절 보따리를 쌀 때 마다 걱정이 참 많았습니다.
내가 떠나면 나만 바라보던 저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데, 내가 가버리면 이 시설이 과연 제대로 운영이나 될 수 있을까?
저 많은 후원자들 다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몇년 뒤에 슬쩍 그 소임지를 가봤더니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 없는데도 다들 환한 얼굴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공연히 부질없는 걱정을 했습니다. 
 
내가 떠나가야 더 잘 됩니다.
내가 떠나가면 내 뒤에 오실 그분께서 더 큰 사랑으로, 더 활기찬 모습으로 아름답게 모든 것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큰 행복, 큰 충족감을 안고 무대 뒤로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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