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29-34
내가 어쩔 수 없을 때 착한 사람을 가려내는 방식
린제이 로한(Lindsay Lohan)은 나중에 인생의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경력 궤적이 크게
영향을 받은 아역 스타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사랑받는 아역배우에서 법적, 개인적 문제에
직면하기까지의 그녀의 여정은 언론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한은 아동 모델이자 청순한 아역배우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었습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인으로 전환하면서 로한은 연기 이외의 이유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명성, 압박감, 성인 역할로의 전환 등 아역 스타와 관련된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음주 운전(DUI), 마약 소지, 절도 혐의로 체포되는 등 표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종종 법원 출두, 재활 기간 및 보호관찰 기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임신 상태로 음주와 흡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착한 이미지를 가졌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대본에 그렇게 쓰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본래 착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착해지는 방법은 착한 누군가를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혼자 힘만으로는 전혀 착하지 않고 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착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도 어려움이 닥치면 그 연극을 멈추고 본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피조물이 혼자서 착해질 수 없는 이유는 언제는 ‘생존’ 문제 때문입니다.
자존심에 기대고 살며 그것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착해지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 등 뒤에 나를 사랑하는 죽음까지 이기는 엄청난 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가 나의 생존을 책임져주지 않는 한 사실 착한 연극도 힘듭니다.
평화가 없으면 착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착함도 결국 아버지의 착하심을 드러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자신을 죽이고 아버지의 뜻을 드러냄으로써 본인도 착하게 되신 것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착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냄으로써 착해졌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이 어떻게 부모와 자기가 믿는 신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그 모습이 얼마나 착하게
보이는지 tvN ‘프리한 19’에 나온 두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죽음의 문턱 앞에 다다른 13살 소년, 매티. 소년은 엄마에게 재차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충분히 잘해온 거죠?” 13년이라는 짧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노래하며 하늘나라로 간 소년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세 살 때부터 시와 짧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며 천재 시인으로 불린 매티는 안타깝게도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형과 누나는 모든 신체 기능이 서서히 마비되는 선천성 희귀병인 근육성 이영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요, 어머니와 매티 자신도 똑같은 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티가 쓰는 글은 결코 암울하거나 나약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이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나는 살아있습니다. 나는 숨을 쉽니다.
진짜 살아있는 아이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삶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자신을 시로 써낸 것 지난 2000년 아이들에게 희망 메시지와 함께 발간한 첫 시집 하트송은 미국 내에서만 100만 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매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바로 희망이 있습니다.
매티가 출연하는 토크쇼 방송에서 이런 인터뷰를 합니다.
“때때로 저는 물어요. 왜 나인가? 왜 난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했나?
그리고 그때 다시 생각합니다. 왜 내가 아니어야 할까?”
진짜 천사가 아니고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러나 매티는 처음부터 죽음 앞에서도 다른 이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을까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부모와 신의 선함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착한 것입니다.
또 9살 민규의 이야기.
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살고 있는 알콩달콩 화목한 여섯 가족입니다.
생글생글 맑은 얼굴에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9살 민규는요 네 남매 중 둘째로, 유난히 정이 많고 의젓해서 “엄마 힘들지?” 하며 늘 엄마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효자였습니다.
그런데 2014년 1월 어느 평범하던 겨울 민규에게 갑자기 펄펄 끓는 고열 증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의 검사를 마치고 민규의 어머니 허현아 씨는 의사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뇌염 바이러스 감염입니다.”
너무나 건강했던 아이였기에 도무지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민규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부모라면 아이에게 희망을 걸 것입니다.
그러나 민규도 그것을 바랄 것이라 여겨 부모는 아이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9살 민규는 난치병 환자 네 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게 되었습니다.
착함 안에 착하신 분을 드러내기 위한 십자가가 없다면 그것은 연극입니다.
민규처럼 부모의 착함에 자신을 맡겨 부모의 선함이 자신을 통해 드러나게 하는 것이 진짜 착함입니다.
본성상 인간은 스스로 착할 수 없습니다.
나의 본성을 죽이고 내 등 뒤의 나보다 더 크신 분의 착함을 드러낼 때만 착할 수 있습니다.
착함이 부활이라면 십자가는 기본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저도 조금이나마 착해지려 하고 또 다른 사람을 굳이 판단해야 할 때도 그렇게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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