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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01 조회수 : 797

루카 2,16-21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새해 첫날 우리는 구원의 모델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심을 묵상합니다. 
사실 누구나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이 세상이 인식할 수 있는 것과 결합해 태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깃불의 어머니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발전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모든 빛의 원천은 태양입니다. 
태양도 빛이라 불리지만, 그 태양이 전깃불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태양의 빛이나 전깃불의 빛은 다 같은 빛이라 우리가 보는 한계 내에서 전깃불의 어머니는
발전소라 해도 됩니다.
빛은 태양이지만, 전깃불의 빛의 어머니는 발전소라 해도 됩니다. 
 
그 발전소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성모 마리아는 빛을 나으신 일은 없으십니다.
그러나 전기불빛은 낳으셨습니다. 
그러니 그 전기불빛의 한계 내에서는 그 빛의 어머니라 불리실 수 있습니다. 
 
숯불을 생각해봅시다. 
내가 숯불을 만들었습니다. 
나무와 불을 가져다 한데 모아 숯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나는 숯을 만들지도, 불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둘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둘을 하나로 묶어놓으니 숯불의 어머니는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성모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모님은 사람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의 어머니이십니다.
사람과 하느님을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냥 사람이며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그러면 인성과 신성이 성모님 안에서 결합하였다고 성모님의 공로는 하나도 없을까요?
나무와 불을 다룰 능력을 자녀야 숯불을 만들 수 있습니다.
태양을 잘 받아들여 전기로 전환할 줄 알아야 전기불빛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런 면에서 성모님은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방해하는 것은 실상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2021년 12월 30일 「매일미사」 묵상글에 청주교구 서철 바오로 신부의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이탈리아로 유학 간 첫 학기에 유독 어려운 과목이 있었습니다.
‘기업 윤리’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언어도 문제였지만 토론 수업이라 도무지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시간마다 교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번번이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그저 멋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날 때쯤 교수님도 답답하셨는지 이렇게 놀리셨습니다.  
 
“자네는 성탄 방학이 되면 시칠리아섬의 작은 본당으로 봉사하러 갈 것이네.
가서 고해성사도 주고, 성탄 밤 미사 강론을 할 텐데, 신자들 앞에서 떠듬거리며 ‘오늘 밤은 성탄입니다’ 하고 한마디만 하면 신자들이 손뼉을 치고 난리가 날 것일세.” 
 
신부님은 생각했습니다.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신부인 나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놀리다니.’
신부님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영성 지도를 받는 날이었는데, 지도 신부님을 만나자마자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부님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바오로, 이 일로 배운 게 있어?”
“네. 저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 절대로 학생을 놀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또 배울 게 있어?” 
 
신부님은 생각을 좀 하다가 “제가 이탈리아 말을 잘 못 해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언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또?”
“네. 이젠 없습니다.”
“그럼, 잊어버려!”  
 
신부님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흥분하여 “아니 어떻게 잊습니까?
제가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게 말이 됩니까?” 하며 씩씩거렸습니다. 
 
영성 지도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바오로, 너 지금 기도할 수 있어?”
“아니, 지금 기도가 중요합니까? 그 교수가 저를 놀렸다니까요?” 
 
그러자 영성 지도 신부님은 “바오로, 하느님이 중요해, 아니면 그 교수가 중요해?
지금 네 마음을 온통 그 교수의 말에 빼앗겼잖아! 하느님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너의 마음을 그 말에 빼앗겨 하느님은 안 계시잖아.
바오로, 단 1초라도 네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세상 것에 빼앗기지 마!”
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신부님은 홍두깨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좋은 생각은 그리스도 생각의 반영입니다. 
내가 좋은 생각을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만큼 내 안에 잉태되십니다. 
나쁜 생각을 한다면 지혜이신 그분이 그만큼 내 안에서 자리를 잃습니다. 
성모님은 모든 사건을 주님 안에서 묵상하였습니다.
온 정신이 말씀으로 채워져 그분을 낳아 그리스도의 어머니, 곧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목동들의 말을 듣고 “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라고 합니다.  
 
그분의 생각은 온통 좋은 생각들로 가득 차서 우주보다 큰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영혼은 하느님을 받아들일 만큼 큽니다.
다만 우리가 다른 생각들로 우리 생각을 오염시키고 주님께서 들어오실 틈을 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여기 또 하나 순결한 영혼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2015년 11월 13일, 평범한 가장이었던 앙투안 레리스는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으로 아내 헬렌을 잃었습니다. 
그는 고통 가운데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테러범들을 향해 편지를 썼는데, 페이스북에 게재된 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밤, 당신들은 특별한 생명을, 내 일생의 사랑을, 내 아들의 엄마를 앗아갔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분노하지 않겠다. 
나는 당신들이 누군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당신들은 죽은 영혼일 뿐이다. 
나는 내 분노를 당신들에게 선물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은 당신들과 똑같이 무지에 굴복하는 것일 테니. 
 
내가 두려워하고, 같은 나라의 국문들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기를 바라겠지만, 당신들은 실패했다. 
 
물론 나는 애통함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이 작은 승리는 당신들에게 양보하겠다.
하지만 그 승리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내가 매일 우리와 함께할 것이며, 당신들은 결코 갈 수 없을 자유로운 영혼들이 있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들과 나, 우리는 두 사람뿐이지만 이 세상의 어떤 군대보다도 강하다.
더 이상 당신들에게 쏟을 시간이 없다. 
낮잠에서 깨어난 아들 멜빌에게 가봐야 한다.
우리는 평소처럼 함께 놀 것이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는 평생 동안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 당신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이 아이의 분노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든 생각들은 뱀과의 대화입니다. 
그 주제는 세속-육신-마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광야에 나와 단식하며 기도하는 게 제일입니다.
제가 그리스도를 만날 때도 단식 중이었고 전날부터 머릿속에는 하루 동안 먹을 유일한 것,
곧 새벽 미사 때 모시게 될 성체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이 잉태되고 말씀을 전하며 말씀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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