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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3-12-28 조회수 : 863

마태오 2,13-18 
 
자유의지도 없이 죽임당한 아기들이 어떻게 순교자가 될까? 
 
 
아기가 태어나려면 엄마는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 피 흘림이 아기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됩니다.
어떤 생명이든 피의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 흘림은 본인들의 선택입니다.
반면 오늘 아기 순교자들은 본인들의 선택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본인들이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순교자로 인정될 수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구약의 모세가 파라오의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일강에서 죽어야만 했던 아기들도 순교자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들은 모세의 길을 닦았습니다.
어떻게 본인의 선택이 아닌데도 하느님께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는 데도 그 피의 길이 필요 없었을까요?
가장 먼저 순교의 길을 가셨던 분이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그다음이 베들레헴의 아기들입니다.
그들은 헤로데가 메시아가 죽었다고 믿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는 엄마의 역할을 한 이들입니다.  
 
누구나 하느님 참 생명의 길을 자기 피로 포장하는 이들은 구원받습니다.
단지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다는 것을
잘 압니다.
칼뱅이 주장하는 대로 심판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예정설은 없습니다.  
 
‘터미네이터’(1984)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SF 영화입니다.
줄거리에서는 터미네이터로 알려진 사이보그 암살자가 사라 코너를 죽이기 위해 2029년부터 1984년까지 과거로 보내집니다.
사라는 미래의 아들인 존 코너가 종말 이후의 미래 기계에 대항하는 저항군을 이끌게 될 것이기
때문에 목표가 됩니다.  
 
한편, 인간 쪽에서도 존 코너는 자기 어머니 사라를 보호하기 위해 군인 카일 리스도 과거로
보냅니다.
영화는 터미네이터가 사라를 끈질기게 쫓는 동안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을 펼치고, 카일은 그녀를 보호하고 미래의 위험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카일은 결국 자신도 모르게 자기 상관인 존 코너의 아버지가 됩니다.  
 
카일 리스는 사라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터미네이터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 행동은 사라를 구할 뿐만 아니라 기계에 대한 저항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존 코너의 미래 탄생을 보장합니다.  
 
존 코너가 자신을 과거로 보낼 때 카일 리스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이력을 알고 있는 존은 자신의 존재도 보장하는 임무를 위해 리스를 선택합니다.
이는 리스의 과거 여행이 미래의 존 코너 탄생에 필수적이라는 역설을 형성합니다.
존 코너는 카일 리스를 보며 이미 과거에 자기 어머니를 위해 희생할 존재로 여기고 그를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 눈엔 잠깐 나타났다가 죽는 존재들일지라도
하느님은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그 무언가가 있어서 선택받았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교회를 박해한 것은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자비를 입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1티모 1,13) 
 
모르고 한 일이라면 용서받기 쉽습니다. 그래도 바오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1티모 1,15-16) 
 
분명히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는 합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죄인인 줄 알기에 부르심을 받았고 다른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려는 목적으로 선택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1티모 1,12)  
 
바로 ‘성실성’입니다.
이 단어는 ‘믿을만한’이란 뜻입니다.
하느님께 충실하여지려는, 옳은 일이면 목숨을 바치려는 충실성을 보고 주님께서 바오로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미리 정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심판받는다면 그 가장 중요한 기준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가’입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러한 ‘착한 뜻’을 가진 이들에게 평화가 주어집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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