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자가 지혜롭다며 많은 이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현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고민을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돈을 안 쓰면 자린고비라고 흉보고, 돈을 좀 쓰면 잘난척한다고 흉을 봅니다. 도대체 어떻게 돈 관리를 해야 할까요?”
현자는 한동안 침묵 속에 있다가 주먹 쥔 손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제가 만약 주먹을 쥐고 펴지 못하면 이 손은 어찌 될까요?”
그리고 이번에는 손을 쫙 편 뒤에 부자 앞에 내밀면서 또 물었습니다.
“이렇게 편 손을 주먹 쥐지 못한다면 이 손은 뭐가 되는 거요?”
“돈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꼭 써야 할 때 손바닥을 쫙 펴서 흔쾌하게 쓰고, 돈을 아껴야 할 때는 주먹을 꽉 쥐어 철저하게 아껴야 불구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분별력이 있어야 사람들도 함부로 입을 가볍게 놀리지 않을 것이고, 더러 입을 놀리는 사람이 있어도 자기 주관만 뚜렷하면 전혀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주먹을 쥐고만 있어도 또 손을 펴고만 있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도 아껴야 할 것은 아끼고 나눠야 할 때는 나눌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돈만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도 그렇고, 나의 능력과 재능도 그렇고, 그 밖의 여러 부분에 있어서 이런 분별력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주먹 쥔 삶만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나누지 않고 혼자만 간직하는 마음은 큰 잘못입니다.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표현되는 요한 사도 축일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주요 사건에 늘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성모님을 맡길 정도로 믿고 사랑했던 제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가 이렇게 예수님께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멈출 때와 앞으로 가야 할 때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살피셨고, 또 곧바로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로부터 무덤이 비었다는 말을 듣고서 베드로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아무래도 더 젊은 요한이 더 일찍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덤 안으로 먼저 들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또 자신도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무덤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몫을 베드로에게 넘깁니다. 주님께 수위권을 받은 베드로를 배려한 것입니다.
이렇게 멈출 때와 앞으로 갈 때를 분별력있게 구별하셨던 요한 사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그 분별력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포기하면 그 순간 경기는 끝나는 겁니다(이노우에 타케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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