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20,2-8: 부활 날 아침 무덤에 간 제자들
오늘은 사도 요한의 축일이다. 본시 전례는 성탄 다음 날을 성 스테파노 축일로 정하였고 그다음 날을 사도 요한의 축일을 지내게 하고 있다. 스테파노 성인은 교회사에서 첫 번 순교자이시다. 교회는 예수님을 처음으로 생명을 바쳐 증거하신 성인을 먼저 지내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다음 당신의 일생을 통해 그분이 사랑이심을 증거한 요한 사도를 오늘 기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우리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도 증거해야 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이 항상 사랑의 삶으로써 증거의 삶이 되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빈 무덤 이야기가 나온다. 요한은 베드로보다 먼저 달려가 무덤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무덤에 먼저 들어가지 않고 베드로 사도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베드로의 으뜸 수위권이 나타난다. 베드로가 먼저 무덤에 들어가고 자신은 그 뒤를 따라 들어가 주님의 부활을 믿은 첫 사람이 된다. 무덤 안에는 수의가 흩어져 있었는데 예수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고 한다. 이 수건은 얼굴에서 치워진 것이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이 없고, 하느님을 만난 모세의 얼굴도 수건으로 가려야 했다.
얼굴이 너무나 빛나서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얼굴은 인간으로서 관상할 수가 없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봄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으므로 더는 수건이 필요 없게 되었다. 요한은 실제로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고 복음에서 말하고 있다. 이제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영광을 사랑을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과 나누었던 친교는 제자들만 누리는 특권은 아니었다. 요한은 이 친교를 전 교회 공동체가 나누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그분과 진정한 친교 안에 살고 있는가? 또 나의 형제자매들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게 산다면 이것은 우리의 특권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이 특권을 다른 사람들도 누리게 하여야 한다. 이 특권은 끝까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특권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매 순간 사랑의 삶을 살기 위해 나를 주님 앞에 낮출 수 있는 삶,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살고 실천하면서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을 낮추셔서 사람이 되신 그분을 닮을 수 있다. 우리도 성탄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삶 속에서 그분과 나누고 있는 친교의 기쁨이 나의 것으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사도 요한의 축일을 지내는 의미이다.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우리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어야겠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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