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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3-12-26 조회수 : 906

마태오 10,17-22 
 
정의롭지 못하면 자비롭지도 못하다 
 
 
오늘은 성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입니다. 스테파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지혜와 능력에 있어서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그를 시기한 자들도 그를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하느님은 스테파노에게 이 세상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스테파노는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신 것과 같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나를 모함하여 십자가에 못 박거나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분들은 어떻게 그런 자비의 마음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자비는 ‘정의’의 열매입니다.  
 
자칫 정의가 자비와 반대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정의로 심판하여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것은
자비롭지 않은 처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의와 자비는 결국 같은 선에 있습니다.  
 
‘오은영쌤 육아지침서’에 동생들을 지극히 싫어하는 5학년 딸아이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동생들을 “없어져 버려!” 혹은 “쟤네 입양 보내!”라고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의 애정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생들을 낳은 엄마가 매정하기만 합니다. 
 
왜 금쪽이는 동생들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그리도 모질까요? 자비롭지 못한 이유는 정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정의롭게 사랑을 준다고 여기지만, 자신은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롭다면 더 큰 사랑을 받기 위해 더 노력할 것입니다. 불평만 하지는 않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라는 시를 쓴 송명희 시인이 있습니다.
심한 뇌성마비로 말을 하기도, 움직이기도 힘들지만 하느님을 “공평하다”라고 노래합니다. 
 
이 가사는 주님께서 불러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평하다고 쓰라고 할 때는 쓰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뭐가 공평하냐는 것입니다.
이때는 자신의 처지를 친구들과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늘이 자신에게 해 준 은혜를 봅니다.
그랬더니 공평함을 넘어서 ‘감사함’이 생겨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라고 노래합니다.
하느님을 정의롭다고 여기게 되면 누구에게나 넘치는 사랑을 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다른 이들이 받지 못한 것들이 보이게 되어 다른 이들을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부모가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아이에게 어떻게 사랑을 주어야 할까요? 문자로 사랑을 전달할까요?
그것으로 될까요? 한 아이에게 잘해주면 다른 아이가 질투합니다.
정의롭다면 노력하는 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노력해서 인정받습니다.
그 인정은 내가 형제들과 같은 수준이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비로울 수 있습니다.  
 
‘금쪽같은 내새끼’에 동생이 태어나자 질투가 늘어버린 꼬마 아가씨가 나옵니다.
여기서 금쪽 처방은 아기가 부모처럼 동생을 돌보는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동생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 부모와 같은 수준임을 믿게 됩니다.
그러자 질투가 사라집니다. 자비로워집니다.  
 
오늘 스테파노가 하늘이 열리고 삼위일체 사랑을 바라봄이 이와 같습니다.
스테파노는 정의롭기에 노력하는 만큼 하느님께서 보답을 주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불쌍하게 바라볼 눈을 얻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이들을 자신들에게 돌을 던져도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테파노는 자신이 그런 것처럼 하느님도 사랑에 대해서는 공평하신 분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느님은 정의로우십니다.
부모가 그렇듯 누구든 당신 수준으로 높여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정의롭지 못해서 하느님도 공평하지 못하다고 믿는 이들에겐 아무것도 주실 수 없습니다.
은총으로 주어도 믿음의 열매가 맺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끝까지 형제들을 향해 자비로울 수 없습니다. 
 
결국 정의는 하느님 자비를 얻게 하고 하느님 자비는 이웃을 정의롭게 대하게 됩니다.
그것이 모든 이들에게 대한 자비입니다.
결국 정의와 자비는 하나입니다.
자비는 본성상 정의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비는 모든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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