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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3-12-24 조회수 : 857

루카 1,26-38 

 

자기를 긍정하려면 성당 다녀도 소용없는 이유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거의 이단이라는 식의 카톡을 보내오는 분이 계십니다.

동성애를 인정하고 동성애 커플에게 축복해 주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황님이 동성애나 동성결혼을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집이나 차, 심지어 짐승이 사는 축사도 축복해 주는데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에게

축복을 거절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속해있으면서도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교회에 나오는 예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축복받지 못합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보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했다면

하느님 축복을 온전히 받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즈카르야처럼 벙어리가 되든지, 부분적으로나 혹은 아예 축복받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축복받으려면 축복해 주는 이부터 긍정해야 합니다. 교회를 긍정하지 않고 교회보다 자신이 옳다고 말하는 이가 어떻게 성체와 고해성사의 은혜를 완전히 받을 수 있겠습니까?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아프다며 돈 요구하는 집 나간 엄마, 도와드리는 게 맞을까요?’

라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버리고 계속 돈을 요구하며 심지어 자살을 암시하는 말까지 하는 엄마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장훈 씨는 “평생 아무것도 해준 게 없으면서 고작 스무 살짜리 딸한테 겨우 석 달 생활했다고

천만 원을 내놓으라는 엄마가 사람이냐?”라며 크게 격분합니다.

이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거 보통 일이 아니야, 너도 네 삶을 찾아.”라고 충고합니다.

사연자는 잘 받아들이고 기분이 좋아져서 떠났습니다.  

 

위 청년 여자아이와는 다르게 욕만 먹고 간 예도 있습니다.

사연자는 14년 동안 서울 올라와서 한 달에 약 천만 원씩 열심히 일한 청년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속초 고향에 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돈을 서울에서 더 벌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이 사람은 보살들이 하는 말을 다 튕겨냅니다. 사실은 어머니가 매우 아프신 것도 아니고 어머니 곁에 형도 있으며 자신이 자주 내려오는 것을 귀찮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온 것일까요? 자기가 이런 처지라는 것을 이해해 달라는 것밖에 안 됩니다.

어머니가 집이 세 채 있고 땅도 있는데 어머니를 설득하여 자기를 좀 도와주게 해 달라고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서장훈과 이수근은 “그렇게 답을 잘 알면서 여길 왜 왔어. 네가 알아서 해!”라고 소리 지릅니다.  

 

은총의 중개자 앞에서 자기가 옳음을 증명하려 한다면 상대를 은총을 주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총을 받을 수 없고 그러면 기쁜 신앙생활을 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거든 자기 자신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마태 16,24; 루카 9,23 참조). 

 

그런데 여기서 “자기를 버리고”라는 번역은 실상 “자기를 부인하고”로 바꾸어야 합니다.

‘부인한다’(to deny)라는 말은 ‘자기가 옳지 않음을 인정하다’라는 말입니다.

내가 옳지 않음을 인정하려면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긍정해야 합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당신은 종에 불과하니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라고

고백하는 ‘피앗’, 혹은 ‘아멘’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께서 파견하신 천사를 긍정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성체 앞에서 하는 “아멘!”은 사제를 통해 은총이 주어짐을 긍정하는 고백입니다. 

 

어차피 은총은 순종과 함께 받아들여야 하기에 자기를 뱀과 같은 존재로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려는 사람은 주님께서 파견하신 이를 긍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체를 영해도 소용없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모님을 긍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그 태중의 아드님 또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회의 수장인 교황이나 주교, 사제들을 부정하면서 교회를 통해 주어지는 은총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것이란 착각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파우스티나 성녀는 어떤 영혼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부탁받았습니다.

그녀는 기도는 물론이요, 고행까지 하였습니다. 

고해성사 때 이것을 사제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사제는 고행 대신 강생의 신비를 잠시 묵상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녀는 사제의 말에 순종하여 고행용 쇠사슬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희생 같지도 않은 것으로 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묵상하려고 성당에 앉았을 때 예수님께서 이미 은총을 주었고 이는 고행 때문이 아니라 순종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주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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