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46-56
하느님께서 선택하시는 사람들
오늘 복음은 ‘성모 찬송’입니다. 성모 찬송 안에는 성모님의 겸손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선택하신 이유가 바로 이 겸손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겸손한 이라야 당신 선택에 더 감사할 수 있고 그래서 당신도 더 기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엄청난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한 운동선수가 된 미식축구 선수 마이클 오어(Michael Oher)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마이클은 마약에 중독된 어머니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마이클의 아이큐는 80입니다.
마이클은 오갈 데가 없어서 비를 맞고 배회합니다.
이때 한 백인 상류층 가족이 그를 집으로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그의 운동신경을 알아보고는 그를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로 키울 계획을 세웁니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생활하며 커다란 화제를 일으킨 오어는 모든 대학팀이 원하는 선수가 됩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려면 공부도 어느 정도 해야 합니다.
가족은 과외 선생들을 대주며 오어의 공부도 돕습니다.
다행히 성적을 높여 대학에 들어갔고 프로팀에는 수백억을 받고 입단하여 나중엔 슈퍼볼도 우승합니다.
왜 모든 게 부족할 게 없는 상류층 가족은 오어를 선택했을까요? 자신들이 아니면 오어가 제대로 꿈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있다면 그만큼 능력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또 그들이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못했다는 것을
오어도 알기 때문에 그 가족에 지금도 감사하며 삽니다.
도자기를 배우겠다는 한 청년이 도자기를 잘 굽기로 유명한 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 도자기 장인은 젊은이를 잘 맞이해 주었고 공장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좋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가 거실에 있는 유리 상자 안에 든 꽃병을 보며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저 작품은 정말 귀한 것이겠군요.
선생님께서 만드신 것입니까? 저에게 파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얼마면 되겠습니까?”
도자기 장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젊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나에게 얼마를 준다고 해도 저것은 팔 수 없는 물건이라네.
내가 자네와 같은 젊은 시절 하는 일은 잘되지 않고 그래서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우연히 다른 도자기 공장에서 쓰고 남아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흙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주어다가 저 꽃병을 만들고 구운 것일세.
나도 처음엔 저렇게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버려진 흙으로도 저 정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고, 그때부터 술과 도박을 끊고 열심히 정진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네.
내가 남이 버린 아무 쓸데 없는 흙을 가지고 저런 작품을 만들었지만, 또한 저 작품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네. 그런데 어찌 돈을 받고 팔 수 있겠나.”
버려진 흙으로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 때 자기 능력이 드러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것으로 가장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자기 자신도 만족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표현할 때,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라는 시편은 인용하십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가장 천대받고 가장 큰 죄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지만, 하느님은 그 천대받는 돌로 당신 나라 건설을 위한 주춧돌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비천한 당신 자신의 처지를 굽어보시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큰일을 하셨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 능력도 쓸모도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인간 구원을 위한 가장 귀한 도구가 되게 하신 하느님을 어떻게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피카소는 버려진 자전거의 안장과 손잡이로 ‘황소 머리’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1993년에 293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아마 많은 훌륭한 작품을 남긴 피카소도 버려진
자전거로 만든 황소 머리를 보고 가장 기뻐할 것 같습니다.
만약 성모 찬송처럼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으로 살고 싶다면 성모님처럼 자신을 아무 쓸모도 없는 비천한 존재임을 인정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버려진 돌을 머릿돌로 만드는 것을 즐기십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성모 찬송을 듣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라는 말은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사제가 되려고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사제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그런 나약함을 보시고 저를 사제로 불러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약하다는 것, 비천하다는 것, 그것은 주님께 부르심을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에 착안하여 자신이 어떤 자리를 맡아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을 그 자리에 앉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자신이 없는 이를 앉힙니다.
그리고 믿어주면 그는 결국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난 봉사자가 됩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해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는 사제로서는 기쁨이 두 배가 됩니다.
하느님도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시고 그러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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