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5-25
믿음을 받고 싶으면 손에 쥔 그걸 내려놓아라!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구세주의 선지자가 그에게서 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믿지 못합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
벙어리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조용하고 순응해보라는 뜻입니다.
해보면 알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지 않게 되자 정말로 그 일이 실현됩니다.
만약 계속 자기 생각을 말하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왜 세상 사람들은 믿어서 손해 볼 게 전혀 없는데도 믿지 않을까요?
믿는다고 크게 손해 볼 게 없습니다.
죽고 나면 알 일입니다.
진짜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믿은 게 얼마나 다행일까요? 하지만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믿음을 버립니다.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본 적이 있는가』란 책을 쓴 전성민 씨가 있습니다.
그는 20대를 게임중독으로 날려버렸습니다. 행정고시 공부하다가 게임에 빠져 젊은 시절을
폐인처럼 날린 것입니다.
군대에 다녀오니 서른한 살이었습니다.
절망적인 마음으로 자신에게 묻습니다.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후회 없이 모든 걸 걸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부모님에게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2년 만에 5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행정고시와 입법고시까지 동시에 합격합니다.
우리는 왜 믿지 못할까요? ‘자존심’을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믿었는데 하느님이 없으면 창피할까 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자기 자존심과 맞바꿉니다. 사이비에 들어가서 이건 아닌가 싶어 나오고 싶어도 창피해서 못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 자존심이 그만큼 믿음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입니다.
노태권 씨는 중졸 막노동꾼이었습니다.
난독증이 있어 글도 읽을 줄 모릅니다.
두 아들은 중학교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둘 다 자퇴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겠다고 먼저 공부를 시작합니다.
난독증임에도 막노동하며 틈을 내어 공부한 끝에 2006년 수능 모의고사를 일곱 번 만점 받습니다.
12과목 모든 과목 만점을 맞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을 가르쳐서 맏이는 서울대 경영학과 4년 장학생, 둘째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수석으로 입학시킵니다.
노태권 씨가 꿈꿨던 세상은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믿게 되었을까요? 그가 자존심을 내려놓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IMF 구제금융 시절 서울에서 구두닦이를 할 때였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사흘 동안 한 명의 손님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흘을 꼬박 굶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겠습니까?
그때 구두를 신은 발 한쪽이 자기 앞에 올려졌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구두에 떨어졌습니다.
눈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려고 울면서 엄청 열심히 구두를 닦았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구두를 열심히 닦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1,000원이나 2,000원을 주며 나에게 구두를 닦아달라고 발을 내미는 사람에게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다면 그 사람의 자존심은 어디 있는 것일까요?
눈물로 다 빠져버린 것입니다.
더는 자존심이 없어서 실패가 두렵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믿기 쉬워집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전성민 씨가 처음에 게임중독이 되었던 것은 시험에 떨어지는 것에 대한 창피함을 이기기 위한 자기합리화가 더 컸습니다.
핑곗거리를 만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표징’을 달라며 핑계를 댑니다.
사실 표징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존심이 강해서 믿지 못하는 것이면서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하느님이 없으면 존재할 수조차 없는 존재입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기 싫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믿음을 버리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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