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7,10-13
성체는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는 온전히 살아 계십니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마태 17,12)
예수님께서 산을 내려오면서, 제자들에게 선구자 세례자 요한, 그리고 당신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제멋대로’라는 표현에 한동안 멈춰 묵상을 해봅니다.
꽤 부정적인 뉘앙스로 여겨집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 이성적이거나 상식적인 사고나 판단이 배제된 즉흥적인 행동....
결국 ‘제멋대로’라는 표현은 진지한 성찰을 통한 신앙의 눈이 아니라 그저 인간적인 눈만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인 규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정관념이나 틀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부 몰지각한 유다인들의 시선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기대했던 선구자와 메시아의 모습이 따로 있었습니다.
좋은 가문을 배경으로, 무소불위의 권능과 휘황찬란한 복장을 한 화려하고 멋진 선구자와
메시아의 모습을 잔뜩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눈앞에 등장한 선구자는 어땠습니까?
외양부터 남루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얼굴은 평생토록 계속해온 고행과 극기의 생활로 수척하고 거칠었습니다.
입고 있는 옷은 길바닥에서 주운 낙타털옷에다 맨발이었습니다.
거듭 외치는 예언의 말씀은 가슴을 후벼 파는 쌍날칼 같아 도무지 듣기가 민망했습니다.
예수님은 한술 더 떴습니다.
변반 중의 변방 갈릴래아 사람, 그 중에서도 낙후된 깡촌 나자렛 사람이었습니다.
뒷배경도 시원찮았고 가방끈도 짧았습니다.
거기다 그가 하루 온종일 어울리는 사람은 세리와 창녀, 죄인과 중병환자들이었습니다.
너무나 실망스러웠던 유다인들은 도저히 그들을 선구자요 메시아로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뚜렷한 징표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유다인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그릇된 고정관념, 끼고 있던 색안경으로 인해, 끝까지 그들을 거부하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선구자, 어떤 예언자, 어떤 메시아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까?
이번 성탄 우리는 과연 어떤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오늘도 매일의 성체성사 안에서 아기 예수님께서는 탄생하시고, 성장하시고, 고통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는데, 우리는 너무 멀리서만 그분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성체는 물건이 아닙니다.
살아 있지 않은 사물이 아닙니다.
성체는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는 온전히 살아 계십니다.
이것을 의식하며 그분을 받아 모실 때 우리는 더욱 온전히 살아 있게 되고, 그리하여 사도 바오로와 함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니 플린, 성체성사의 일곱가지 비밀, 성바오로)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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