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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3-12-14 조회수 : 770

마태오 11,11-15 
 
예수님을 믿어도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이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를 폭행하는 것을 거룩한 것을 모독하는 죄라고 해서 독성죄라고 합니다.
독성죄는 세례자 요한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의 것을 취하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이나 하느님의 것이 피조물인 인간에게까지 폭력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수 있을까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있을법한 한 부부의 이이기입니다.
어떤 남자는 직장 일을 열심히 하며 아내를 굳게 믿는 순정파 남편입니다.
둘에게는 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능력이 없는 남편을 무시하며
남편을 만나기 전 남자와 다시 만나는 아내가 있습니다.
길면 꼬리가 밟히는 법. 남자는 조금씩 아내의 불륜 사실을 눈치챕니다.
하지만 남편은 다시 아내가 뉘우치고 돌아왔을 때 어색하지 않도록 내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점점 더 대범해져서 남편이 잠깐 집을 비워도 남자를 들입니다.
급기야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 아기의 분유에 수면제까지 탑니다.
이런 아내와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남자를 보며 남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더는 아내가 아기에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 들면 아내를 떠나고 어쩌면 둘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내를 떠나야 하는 남편도 슬프겠지만, 더 고통스러운 복수는 불륜을 저지른 둘의 몫이 될 것입니다.  
 
부부는 일단 혼인했다면 어쩔 수 없이 상대에게 모든 것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이고 결혼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결하지 못한 배우자와 혼인했다면 아무리 그녀와 헤어져 살 능력이 되더라도 한 번은 물려야 합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한순간에 모든 인간을 먼지로 만들어버릴 수 있으셔도 그분은 사랑이시기에 한 번은 폭행당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독성죄까지 일어날 수 있도록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설 마음이 없는 인간이라면 결국 어떻게 할까요?
관계를 끊어버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 5장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이 아들 벨사차르 왕은
큰 잔치를 벌이고 그와 그의 손님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신성한 그릇으로 포도주를
마십니다.
잔치 도중 신비한 손이 나타나 벽에 메시지를 씁니다.  
 
벨사차르는 매우 놀라 그 글을 해석해 달라고 박사들과 마술사들을 불러왔지만, 그들은 글을
해석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 다음 왕비의 제안으로 다니엘을 데려옵니다.
지혜와 꿈과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능력으로 유명한 다니엘은 글을 읽고 해석합니다. 
 
다니엘은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이라는 메시지를 해석하여 하느님께서 벨사차르의 통치를 심판하시어 그의 나라를 메디아 인들과 페르시아 인들에게 주시겠다는 뜻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날 밤 벨사차르는 살해됩니다.
이 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프레스’는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다니 5,25-28) 
 
성체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하느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것이 되는지, 아니면 우리가 그분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지. 여기서 세례자 요한이 필요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내가 죽고 내가 그분의 것이 되어
그분께 이용당하는 것이 내가 살아서 그분을 나의 금송아지로 이용하는 것보다 더 행복함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예수님은 처음에 그들에게 폭행당하십니다.
그러니 먼저 회개합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파라오가 그리웠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파라오로부터 이스라엘을 탈출시키기 위해 이집트로 들어갔습니다.
이때가 세례자 요한의 역할입니다.
홍해를 건넌 뒤로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목자,
곧 메시아의 역할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파라오를 부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파라오는 ‘나는 나다’라고 하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지금까지 그와 대치되는 ‘나’의 상징입니다.
창세기 에덴동산의 뱀과 같습니다.
뱀을 긍정하면서 하느님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독성죄가 벌어집니다.
하느님을 폭력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선악과를 바치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아가 강하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독성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라도 감사의 봉헌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부정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구체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감사하게 봉헌하는 이들은 결코 성체를 영하며 독성죄에 빠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체를 영해도 구원될 수 없는 이유는 그 사람이 세례자 요한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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