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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3-12-08 조회수 : 959

마태오 9,35-10,1.6-8 
 
​기쁘지 않게 주는 것 안에 기쁜 소식이 어떻게 섞이겠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뽑으시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파견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면서 병자도 고쳐주고 더러운 영들도 쫓아내는 권한을 주십니다.
복음은 물질적인 축복 안에 넣어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밥은 안 주고 인간의 도리만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집을 뛰쳐나가고 말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있듯, 복음도 물질과 영의 결합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빵 하나 전해주는 것은 복음이 될 수 있지만, 배고픈 이들에게 공부만 시키는 것은 고문에 가깝습니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담기듯 우리가 내어주는 것 안에 복음이 담깁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준다고 다 복음(기쁜 소식)이 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내어주는 것이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주는 것이 나의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나의 것을 내어줄 때는 기쁘기보다는 아깝거나 짜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것을 나의 것에 넣어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내어주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이고 그 안에 담기는 기쁜 소식도 주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내어줄 때 항상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거저 받은 것을 준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전에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란 프로그램에서 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짜증만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체벌하고 야단쳤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선생님을 포기할까 생각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것을 내어주고 있다고 착각하면 내가 하는 고생만큼 상대에게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기에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나의 것을 준다고 생각하면 받는 사람도 짜증 나고 주는 사람도 짜증 납니다.
짜증 나는 일을 오래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영성 강의를 들으시는 분이 다시는 그 강의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강의하시는 분이 짜증을 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밤을 새우고 몇 번이고 연습해서 오는데 듣는 사람이 졸고 있으니 짜증을 냈던 것입니다. 
 
그렇게 짜증을 내는 것은 ‘나의 것’, ‘내가 고생해서 얻은 것’을 준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엔 복음이 섞일 수 없습니다. 짜증과 기쁨이 어떻게 섞일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어줄 때는 그래서 나의 것이 아닌 받은 것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깝지 않고 짜증도 나지 않습니다. 
 
어떤 신부님이 계셨는데 그분도 복음을 전하면서 짜증을 많이 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답답해하셨고 집중이 흐트러지는 신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1시간 강의하려면 10시간 준비해야 하는데 듣는 사람들 자세가 안 되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뒤에 그분은 옷을 벗고 사제직을 포기하셨습니다. 
 
기쁘게 주지 않은 것 안에 기쁜 소식이 섞일 수 없습니다.
기쁘게 주지 않으면 나도 상대도 기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사랑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쁘게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은 역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내가 가진 능력, 수입, 시간 등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 행위입니다. 
 
이런 신앙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그 사람이 내어줄 때는 기쁜 마음으로 내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복음전파의 효과도 배가됩니다. 
기쁘게 주는 것 안에만 기쁜 소식이 섞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온전한 정신으로 실천하면 기쁘게 내어주고 그러면 나도 즐겁고 받는 사람도 즐겁습니다. 
 
십일조를 통해 깊이 묵상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받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주고 싶은 마음’까지도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주고 싶은 마음조차 받은 것이라면 주는 것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의 ‘격리 원숭이’ 실험에서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떼어놓아 홀로 자라게 한 원숭이는 남에게 무언가 줄 줄 모르게 성장합니다. 자기만 압니다. 
 
내어줄 줄 모르니 다른 원숭이 무리에도 섞일 수 없습니다.
억지로 자녀를 탄생하게 만들어도 자녀를 사랑할 줄 모릅니다.
자녀가 무서워서 어미에게 달려들면 어미는 발로 차버립니다. 
 
격리 원숭이와 대비되는 것이 ‘치료자 원숭이’, 혹은 ‘구원자 원숭이’라고 불립니다.
태어난 지 약 4개월 정도 되었고 어미로부터 사랑만 받아서 온 세상이 사랑인 줄 아는
원숭이입니다. 
이 원숭이는 격리 원숭이를 쫓아다니며 기쁘게 털을 골라줍니다.
결국, 격리 원숭이도 자꾸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치료자 원숭이의 털을 골라줍니다.
그리고 무리에 적응할 수 있는 원숭이로 바뀝니다.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 다 모기나 기생충처럼 남의 생명을 먹어서 자신을 생존시키려는 욕구만을 가집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관계에서 오는 행복의 맛을 알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관계의 기쁨을 알려주시기 위해 내어주고 싶은 마음과 내어주고 싶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내어주는 행복과 그것을 통해 얻는 관계의 행복도 다 거저 받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안다면 내어주면서 짜증 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기쁘게 주는 것 안에만 기쁜 소식이 담긴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기쁘게 주려면 그 주려는 마음까지도 거저 받은 것임을 기억합시다.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십일조를 생활화합시다. 
 
그러면 나도 기쁘고 받는 사람도 기쁠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가 형성될 것이고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기쁘게 주는 것 안에서만 기쁜 관계가 형성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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