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모리 대학의 교수 율릭 나이서는 다음 날 자신의 강의를 듣는 100여 명의 학생에게 ‘위 사고 소식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자세히 적게 한 다음, 그 답지를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2년 반 후에 같은 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답을 받았습니다.
이제 두 답지를 비교합니다. 그 차이는 어떠했을까요? 학생 중에서 25%가 완전히 다른 대답을 했고, 65%는 세부 사항에서 큰 차이를 보였으며, 단 10%만 동일하게 답변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 현재의 기억이 아주 확실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이렇게 정확하지 않습니다. 대략적이고 나머지는 추론으로 채워가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 감정, 환경 등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 기억하는 것, 생각하는 것 등이 정확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 기억이 무조건 맞는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이의 기억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지혜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틀림도 인정할 수 있는 겸손한 사람이 진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겸손을 강조하신 이유는 이렇듯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종말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주인이 집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맡긴 종들처럼 우리 모두가 부지런하고 충실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지요. 주인은 언제라도, 또 아무 때라도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종이 언제 올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까요? 종은 절대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종은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기 생각만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가 언제 올지 전혀 모르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자기 생각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긴 언젠가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사람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초대 교회 때부터 신앙인의 참된 자세를 ‘깨어 있음’으로 묘사했습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깨어서 주님께서 오실 날을 잘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깨어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큰 선물입니다.
오늘의 명언: 욕구를 절제하는 사람은 욕구가 절제될 수 있을 만큼 약한 것이기 때문에 절제한다(윌리엄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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