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20,27-40
우리의 고통과 눈물, 한계와 좌절, 희망과 기쁨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
오랜 세월 아동 복지 분야 사목터에서 사목하시다가 정년을 마무리하신 수녀님께 들은 말씀입니다.
평생 사목 일선에서 고생하셨으니, 기도 안에서 편안한 노후 시간을 보내야 하나, 고민하시다가,
그게 아니다 싶어 장상께 청원 하나를 드렸답니다.
아동 보육 시설에서 많이도 말고 딱 한 명의 아기만 케어할 수 있기를. 장상께서 흔쾌히 수락하셔서 지금 그 일을 너무나 행복하게 하신다는 말씀, 그 아기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저는 너무 존경스러워서 크게 박수를 쳐드린 적이 있습니다.
심각한 저출산과 초고령화 현상을 동시에 직면한 우리 사회입니다.
저출산도 큰 문제이지만 초고령도 큰 문제입니다.
정년에 도달했지만, 몸과 마음이 아직도 이팔청춘인 젊디젊은 은퇴자, 저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아직 셀 수도 없이 남은 날들은 대체 어떻게 감당할 것입니까?
이런 측면에서 딱 아기 한 명을 선택하신 수녀님의 선택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기와 만용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연세가 90인데, 그래서 서 있기도 힘들고 팔에 힘도 없는데, 오직 용기로 충만해서 갓난아기 한 명 케어하다가, 바닥에 아기 떨어트리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입니까?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식별할 수 있는 기도와 식별력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지난 세기 탁월했던 대 영성가 헨리 나웬 신부님도 비슷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는 저명한 신학자요 심리학자로 평생 유명 인사로 살았습니다.
전 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자신이 개척한 고유한 영성을 전파했습니다.
그의 강의실은 수백 수천 명의 청중으로 가득 찼고, 가는 곳마다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헨리 나웬 신부님이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탁월한 강사, 심리학의 대가, 명문 예일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평생 명예 교수직을 다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새벽 공동체로 들어갑니다.
데이 브레이크 공동체의 공동체 일원이 되어 딱 한 명의 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나중에 헨리 나웬 신부님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명강의를 설파할 때 만나지 못했던 하느님을 거기서 만났습니다.
아담이라는 중복 장애인을 하루 온종일 케어하면서, 그 형제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고통과 눈물, 그의 한계와 좌절, 그의 희망과 기쁨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 한마디를 건네고 계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 38)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만나는 나와 맞지 않는 이웃들, 그가 죽은 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라면, 그의 숨결, 그의 생명, 그의 인생 안에 하느님께서 반드시 살아계시고 현존해 계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아직 살아 숨쉬고 있는 결핍투성이, 상처투성이, 고통덩어리인 우리 각자의 인생 여정 안에도 하느님께서는 굳건히 살아 계시고 현존해 계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저 구름 너머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바로 여기, 이 공동체, 부족해 보이는 동료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 자리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죽지 않고 이렇듯 열심히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비록 고통과 상처 비참으로 얼룩진 오늘 하루지만, 바로 그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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