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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1-17 조회수 : 512

교구청에 갈 일이 있을 때, 또 장례로 병원에 갈 때, 그밖에 송도를 떠나 도심지로 갈 때 자주 지나가는 동네가 있습니다. 바로 옛날에 그러니까 거의 50년 전에 살았던 동네입니다. 함께 차를 타고 있는 분에게 이 동네를 가리키면서, “이 동네가 예전에 자그마한 동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넓은 공터가 있기도 했지요.”라고 말하면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동산이나 공터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거든요.

 

이 동네에서 제가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은 전혀 없습니다. 동산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섰습니다. 갈대밭이 있었던 공터는 지금 많은 빌딩과 상가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당시에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어머니 친구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는 절대로 개발되지 않을 거야.”

 

이사 가자마자 곧바로 터미널이 생기는 등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와 친구분의 예상은 불과 몇 년 만에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 뒤 그곳이 계속 발전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예상도 틀렸습니다. 터미널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이제는 개발이 멈춰진 완전 옛날 동네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늘 틀렸습니다. 그런데 자기 예상은 꼭 맞을 것처럼 생각하고 또 그렇게 기대합니다.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만이 틀림 없이 올바른 길로 가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틀린 주장을 맞는 것처럼 우기고 있던 우리가 아닐까요? 따라서 주님의 뜻만을 찾아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도 겸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우리 역시 겸손의 모습으로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 때, 사람들은 대홍수가 날 것을 알았을까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과연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모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종말을 준비하는 모습이 꼭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인간적인 기준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주님의 기준을 따르면서, 주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종말도 언젠가는 반드시 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노아 시대의 사람들,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뜻이 아닌, 주님 뜻에 집중할 때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용서하지 않는 사람의 내적 고통처럼 큰 고통은 없다. 그것은 평안을 거부한다. 그것은 치유를 거부한다. 그것은 망각을 거부한다(찰스 스윈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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