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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3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1-13 조회수 : 639

루카 17장 1-6절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허허’의 멋과 여유>


언젠가 한 그룹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영성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여러분들 내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작업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용서’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용서의 당위성, 중요성, 필요성에 대해서는 하도 많이 들으셔서 다들 잘 알고 계셨지만, 정적 내게 지독한 아픔을 던져준 ‘그 인간’과 다시 대면할 때, 그 숱한 다짐들, 그 굳은 결심들은 즉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가 내게 안겨준 깊은 상처들만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분개하게 되고 내적인 평화를 잃곤 한답니다.
 
용서를 제대로 하기 위한 비결이 없을까요?
 
한 훌륭한 영적 스승은 용서와 관련해서 참 의미 있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상처니, 아픔이니, 용서니 하는 말이 더 이상 우리 안에 문제되지 않게 원천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길 바랍니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잘 갈고 닦아 미움이나 분노, 실망과 좌절 같은 감정들에 더 이상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무장하길 바랍니다.

우리 내면이 튼튼하면 튼튼할수록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이나 모욕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쉽게 넘길 수 있습니다.
당당하게 맞설 수 있습니다.
쉽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 하느님께서 든든하게 자리하시면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상처나 아픔 앞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이 잘 잡혀있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가하는 어떤 충격에도 동요되지 않습니다.
분노하지 않습니다.
미워하지 않습니다.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쉽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저 ‘허허’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멋과 여유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면의 상태에 도달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자기 수행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노력하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용서 잘하는 비결’을 체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수행자가 대스승 포이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부님, 제가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보지 말고 누구도 판단하지 말며 누구도 비방하지 말게. 그러면 주님께서 평안을 주시게 된다네.”

사막의 교부들 가운데 모세란 큰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출신으로 수행의 길을 걷기 전에 도둑이었으며, 검은 색 피부 때문에 수도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수도자들 사이에서 종종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공이 워낙 탄탄했기에, 그 어떤 외부로부터의 상처나 공격에도 평온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어떤 수행자들의 모임에 갔었는데, 몇몇 스승들이 그를 시험해보려고 그의 면전에서 모욕적인 언사를 던졌답니다.

“도대체 이 에티오피아 사람은 뭣 하러 여기 우리 가운데 와 있는가?”
모세 아빠스는 그저 묵묵히 그 말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제자들이 “스승님,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화가 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화가 났지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건방지게 말하지 말라’ ‘주제 파악을 잘 하라’는 말로 알아들었다오.
그 말은 ‘나를 더욱 낮추어 겸손한 사람으로 처신하라’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사실 모세 아빠스 역시 인간이었기에 사람들이 던진 모욕적인 말 때문에 우선 상처를 받고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내면 안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단 의식적으로 침묵했습니다.
침묵으로 자신의 내면을 다독거렸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상처를 꿀꺽 삼켜 자기 안에 저장하지 않고 상처를 침묵으로 치유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정신 요법이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상처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확실히 한 좋은 수단입니다.
그러나 침묵을 통한 치료법도 있습니다.

침묵으로 소용돌이치는 먼지를 가라앉게 하여 내면의 흥분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가만히 둠으로써 앙금을 가라앉혀 맑아지는 탁한 술처럼 내면을 깨끗하게 합니다 
 
(‘하늘은 네 안에서부터’, 안셀름 그륀, 분도출판사 참조).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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