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4,12-14
희망이 없어도 희망합시다!
저 같은 경우 계절을 좀 앞당겨 사는 편입니다.
벌써 제 마음이 대림 시기로 건너가 있습니다. 부탁받은 특강 주제는 어떻게 할 것이며, 한 시간 남짓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머리가 복잡합니다.
여러모로 어렵고 힘든 순간임을 감안해서 희망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를 통해 성조 아브라함의 삶을 소개하면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자!’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저희 집에 꽤 광활한 농지가 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되기에, 몇 가지 과일 묘목을 심었습니다.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며 식재를 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지요.
사는 게 바빠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했더니, 묘목들의 성장 속도가 너무 뎌뎠습니다.
시들시들 말라 죽은 친구들도 생겨났습니다.
괜히 심었나, 후회하면서,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습니다.
별로 희망할 것이 없겠구나, 하는 마음에 덜 자란 묘목들에게도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산책을 하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성장이 유난히 더딘 작고 말라 비틀어진 감나무 묘목에서 그럴듯한 감이 딱 두 개 열려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포기했었는데, 또 다른 희망이 생겼습니다.
올해는 거름도 더 챙겨주고, 가지치기도 잘 해주면, 내년에는 네 개가 열리겠지, 하는 마음에
새로운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참 묘하십니다.
우리는 포기했는데, 하느님은 희망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 인생은 실패야, 여기서 끝이야, 하고 좌절하지만, 하느님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말라비틀어진 인생이라고 포기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우리네 삶이 아무리 비참하고 굴욕적이라 할지라도, 실망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인 로마서 말씀이 참으로 은혜롭게 들려옵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하느님의 생각과 우리 인간의 생각을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하느님의 계획과 인간의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살레시오 협력자 회원 가운데 알렉산드리나 마리아 다 코스타(1904~1955)라는 복녀가 계십니다.
포르투갈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기쁘게 살아가던 한 작은 소녀였습니다.
14살되던 해, 안타깝게도 알렉산드리나는 결코 겪지 말아야 할 끔찍한 일을 겪습니다.
불순한 의도를 지닌 사악한 악한들의 공격을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로 인해 그녀의 신체는 점점 마비가 심해졌고, 마침내 21살되던 무렵부터는 병상에 누워 꼼짝 못하게 되었는데, 그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한창 꽃 피어나야 할 21살 나이에 알렉산드리나는 하루 온종일 자신의 방에 누워있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 운운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화가 치미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알렉산드리나는 자신의 그런 비참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그야말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한 것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결실을 맺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했습니다.
‘고통당하고, 사랑하며, 보속하는 것!’ 더 놀라운 사실 한 가지. 그녀는 자신의 병고를 낫게 해달라는 기도, 치유의 기적을 청할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세상의 모든 감실 속에 갇혀계신 수인(囚人) 예수님과의 신비적인 일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알렉산드리나는 하루 온종일 자신의 방에 갇혀 지냈지만, 전 세계 수많은 경당을 순례하며
성체를 조배했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조언을 듣고, 그녀에게 기도를 청하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1955년 10월 13일에 선종했고,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그녀를 시복했습니다.
“저는 기도를 하는 동안, 세상의 모든 감실 속에 계신 성체 예수님 앞에 머문다는 지향을 가지고,
또한 제 영혼 안에 현존하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를 흠숭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늘 기도하곤 했습니다.
오, 나의 예수님,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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