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23,1-12: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모든 신앙인을 대상으로 한다. 오늘의 독서를 보면 특히 교회 안에서 지도하거나 가르치는 책임을 맡은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지도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든 신자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말라기 예언자는 당시 사제들의 잘못을 비난하며 사제들의 회개를 촉구한다. 그들은 율법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을 했지만 “눈먼 인도자들”(마태 23,16.24.26)이 되어, 율법을 왜곡하고 사람들에게 편파적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편파적인 태도는 우리가 모두 한 분 아버지를 모시고 있고, 하느님을 유일한 창조주로 모시고 있다(말라 1,10절)는 사실을 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적인 행위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지적하시고(2-7절),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8-12절)으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공동체 역시 그러한 위선적 태도에 물들지 않도록 하라는 권고이다. 모세의 자리는 가르치는 직무를 뜻하는 것이지, 특별한 자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충실한 율법 해석가들이기는 하지만 율법의 충실한 실행자들은 아니므로 위선자들이며, 위선을 가르치는 자들이라고 하신다(3절). 그들은 제일 높은 자리에 있다는 구실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으면서” 일반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다(4절). 예수님은 어떠신가? 그들의 태도에 맞서서 당신 자신에 대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하신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의 열심을 외적으로 드러내어 사람들이 놀랄만한 행위나 태도를 보였는데, 예를 들면 “성구 넣는 갑”(5절)을 크게 만든다든지, 또는 성경의 지시에 따라(민수 15,37-41; 신명 22,12) 야훼의 모든 명령을 기억한다는 외적 표지로 옷자락, 네 귀퉁이에 술을 달았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기 위한 것이다(6-7절). 위선은 항상 허영과 겉치레와 연결되어있다. 선하고 진실한 것은 없으면서 내면의 거짓, 비열, 허영 등을 가리기 위한 외적 장식만 만들어 낸다. 이렇게 추한 모습이지만 이해관계에서 위선이 나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향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8-10절). 여기에 나오는 스승이나 아버지 그리고 지도자란 명칭들은 교회와 같은 “형제들”(8절) 공동체 안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늘 복음에서의 의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신앙적 차원에서 상위에 있는 척하며 그들을 지배하려는 겉꾸미는 태도에 대한 반박이다. 이것이야말로 교회 안에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마태오는 우리가 모두 유일한 지도자이신 그리스도 안에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마태오는 교회의 권위의 원칙을 확언하고 있다(16,18-19; 18,18). 그러나 그 권위는 봉사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1-12절).
그러한 권위는 말로만이 아니라 참으로 형제들에게 사랑과 밝은 지혜의 봉사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1978년 10월 22일 교황직을 시작하면서 바친 기도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오 그리스도님! 제가 당신의 유일한 권한의 봉사자가 될 수 있게 하시며 또한 봉사자이게 하소서! 당신의 온유한 권한의 봉사자, 기울어질 줄 모르는 당신 권한의 봉사자가 되게 하소서! 제가 종이 될 수 있게 하소서! 아니 당신 종들의 종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신자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신다. “여러분들은 제가 여러분들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이 점에 관해서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그가 행한 사도직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복음 외에 그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종의 역할보다 어머니 역할은 더 위대하지 않은가!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노동을 했습니다”(1테살 2,7b-9). 물론 이러한 분위기 속에는 신자들의 폭넓은 일치도 들어있었다(1테살 2,13). 우리는 누구나 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는다. 특히 말씀의 선포자들 사목자들 사도들은 더욱 그렇다. 이들을 위해 특별히 이 시간에 기도하고 우리 자신 역시 진정한 사랑의 봉사자로 사는 삶을 살아 주님의 말씀과 하느님 나라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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