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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5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3-11-04 조회수 : 443

연중 제31주일

섬기는 신앙인

 

[말씀]

1독서(말라 1,14-2,2.8-10)

기원전 5세기경,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은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파괴된 성전을 다시 세우고 예전처럼 제사를 올리기 시작하나, 매우 형식적이었으며 당시의 사제들은 이 점에 대해 개의치 않거나 앞장서지 않았다. 이때 예언자 말라키가 나서서 동족들의 무관심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는 참된 신앙이 없음을 고발함과 아울러 그로 인한 타락을 질책한다. 예언자는 사람들이 진정한 신심을 되찾을 것을 호소하면서, 윤리적 타락을 벗어나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2독서(1테살 2,7-9.13)

주님의 사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의로 봉사의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사도 바오로는 그 모범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했기때문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다만 그들이 신앙 안에 성장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이것 역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복음(마태 23,1-12)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약에서 오는 규정들을 일러주면서 행동을 통하여 그대로 실천에 옮길 것을 명했다. 사람들은 이 규정들을 실천에 옮기는 가운데 자신을 신심 깊은 자로 자처했으며, 그러기에 율법의 가장 세세한 부분까지도 준수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율법의 글자에 얽매임으로써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하기에 이르렀다는 점과, 자신이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데 급급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단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새김]

종교는 정말 아편과 같은 것일까? 진실한 신앙을 산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나, 형식적으로만 산다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 특히 종교 지도자의 경우, 순명과 봉사 정신을 외면한 채 직업적으로 직무를 수행한다면 이들에게 종교는 아편일 수 있다. 아편처럼 자아도취로 이끄는 종교는 존경받을 수 있는 지고의 공간,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훌륭한 방편으로 자리할 뿐이다. 그러기에 교회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이키려는 모든 시도는 기존 신앙인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위협적인 사건으로 다가온다.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을 뒤로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적으로 비어 있는 사람들, 영적으로 허전한 사람들은 더욱 외적인 것들, 곧 법규들이나 관례에 얽매여 이것들을 명분으로 따지기를 좋아한다.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시켜 주는 율법만이 전부여서 율법의 핵심인 하느님 사랑이나 이웃 사랑은 자리할 곳이 없다. 이들은 자기들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한 나머지 이웃의 생각이나 판단은 고려도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섬기는 자세만이 우리 신앙인들이 양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는 기본 신앙 자세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 형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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