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곶성지에 있을 때, 손을 자주 다쳤습니다. 성지 바깥일을 하다가 나무에 찔린 적도 있고, 요리하다가 칼에 베인 적도 있습니다. 강화도 시골길을 자전거 타고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손을 다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다가 책에 베인 적도 있지요.
올 초부터 인천 송도에 위치하고 있는 성 김대건 성당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그렇게 손을 많이 다쳤었는데, 이곳에서는 다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갑곶성지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갑곶성지와 달리 이곳에서는 손 쓸 일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방 일도, 또 바깥일도 하지 않으며, 자전거 도로는 잘 되어 있어서 넘어질 일도 없었습니다.
손을 많이 다치는 이유는 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친다고 손 사용하는 것을 멈춰야 할까요? 아닙니다. 손 사용을 멈출 수 없으니 조심할 뿐입니다.
마음을 다친 분을 종종 만납니다. 어쩌면 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마음을 많이 쓰기 때문에 마음을 다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처받았다고 마음 쓰는 것을 멈추는 것이 옳을까요?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써야 합니다.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면서 계속해서 마음을 써야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 실천하는 데 써야 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 상처받는 것이 싫겠지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마음을 써야 합니다. 당연히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랑하는 마음을 크게 보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마음을 많이 쓸수록 그만큼 다칠 확률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도 더 가깝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에는 365개의 금령과 248개의 규정이 있었습니다. 이를 모두 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또 이를 지키기도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특히 이를 지켜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알지도 못하고 또 지키기도 힘드니 구원의 길에서 제외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쉬운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바로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이 사랑을 마음에 담고, 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마음을 써야 합니다. 물론 아픔과 상처가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그만큼 가까워집니다.
오늘의 명언: 악마는 삶의 상처와 어떤 경우에는 실수를 이용하여, 예수님꼐서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성 마더 데레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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