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2,13-2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습니다!
신앙 없이, 하느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느님 없이 살다 보니 자신의 힘만 믿습니다.
인간의 힘이라는 것이 어디 믿을 수 있던가요?
지금은 혈기왕성해서 뭐든 다 할수 있을 것 같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습니다.
나이 들고 여기저기 아프고 시들기 마련입니다.
그때야 인간의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하느님 안에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 자신의 능력, 자신의 돈만 믿고 기고만장한 얼굴로 살아가던 어느 날,
갑작스레 다가온 한계, 능력 밖의 상황에 직면하고서야 겨우 하느님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매달리고, 묵주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비웃습니다.
기도는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대놓고 무시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큰코다치는 사람 한두 명 본 게 아닙니다.
죽기 살기로 모아 들이는데 혈안이 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 다 놓쳐버리기 마련입니다.
‘영혼이나 신앙, 사랑이나 우정이 밥 먹여 주냐?’며 정신없이 허상만을 쫓아다니던 우리에게 어느 순간 청천벽력 같은 주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복음 12장 20절)
시편 작가의 강조처럼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습니다.’.
세상의 논리와 그저 육(肉)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릴 것입니다.
복음서 전반을 살펴볼 때 부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시선은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당신이 가난한 집안 출신이어서 그런가 생각도 듭니다.
부자들을 향한 질책과 경고는 아주 매섭습니다.
그래서 때로 부자로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좀 더 심사숙고해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부자, 열심히 일해서 벌은 돈을 아낌없이 ‘살아계신 하느님’이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봉헌하는 부자들은 예수님께서 아낌없이 칭찬하시는 부자입니다.
매서운 질타의 대상이 되는 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돈이라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돈의 위치를 하느님보다 위쪽에 설정해놓은 사람들입니다.
죽어도 자선 한번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돈 많다고 함부로 가난한 사람들 업신여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경고 말씀은 너무나 무서운 말씀, 섬뜩한 말씀입니다.
개념 없는 부자가 강한 경고를 받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또 다른 한 가지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돈이라고는 땡전 한 푼 없는 수도자들에게 오늘 말씀은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하는 묵상입니다.
재물 외에도 ‘부’라고 칭할 수 있는 대상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시간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긍정적인 측면들입니다.
장점들, 경쟁력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좋은 재능들, 어떻게 보면 재물보다 훨씬 가치 있는 ‘부’입니다.
이런 ‘부’를 공동체와 이웃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기쁘게 내어놓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칭찬받는 부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다시 한번 설레는 마음으로 공동체와 이웃, 그리고 세상과 하느님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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