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0,1-9
저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저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이냐시오 주교님의 순교는 추억의 명화 ‘쿼바디스’나 ‘벤허’ 같은 영화에 등장하던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최후 장면과 거의 흡사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엄청난 규모의 종합 운동장이 당시 순교의 현장이었습니다.
콜로세움 안에는 이미 순교자들의 대학살을 직관하기 위한 수많은 군중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벌어질 순교자 처형 장면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메인 이벤트인 순교자 학살극이 벌어지기 전, 경기 장 내에는 검투사들의 목숨 건 격투가 한창이었습니다.
격투에 패배한 검투사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경기장 안은 이미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최고조에 도달하면 드디어 순교자들이 경기장 한 가운데로 끌려 나왔습니다.
이어서 육중한 철문이 하나 열리면 잔뜩 굶주린 사자 떼가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허기진 사자들은 순교자들에게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물어뜯으며 포식을 즐겼습니다.
그 모습에 관중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체포에서 순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참으로 잔인하고 혹독했지만, 이냐시오 주교님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당당히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체포된 주교님은 로마로 압송되어가는 과정에서 수인이라기 보다는 영웅이요 개선장군 같은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압송되어가는 당신의 모습에 가슴 아파하고 통곡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냐시오 주교님은
오히려 그들을 따뜻이 위로했고 격려했습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힘을 내라고, 파이팅 하자고 외치셨습니다.
놀라운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냐시오 주교님께서는 안티오키아에서 로마로 압송되는 그 고통스러운 여정 중에도 머릿속은
언제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양떼에 대한 극진한 사랑은 일곱 통의 편지 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저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저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 두십시오.
저는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저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제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쾌락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 극변까지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와 일치하기 위해 죽는 것이 저에게는 더 좋습니다.
제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바로 그분이며 제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제 출생의 때가 가까웠습니다.”
“지금은 제가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죽음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저의 지상적인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물질을 사랑하기 위한 불은 내 안에 더 없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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